일기

아듀 2016 상

simpleksoh 2016. 12. 3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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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정리하며 개인적인 '아듀 2016 상'을 선정했습니다. 각 분문 수상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 마그네틱이 떨려요 상: JYSC 후드 패딩 점퍼
가을에 바자회에서 만원을 주고 샀다. 겉이 질기고 두툼하며 가볍다. 라이터로 실밥을 태워도 티가 나지 않고, 안쪽에 주머니 천이 얇아 구멍이 났지만 꿰매니 감쪽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맘에 든다.


수상은 실패했지만, '명화그리기 DIY'도 만족스럽다. 부담감이 있어 구매 후 한참 뒤 시작했지만, 이후 틈만 나면 붓을 잡았다. 내손으로 아름다움을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 손에서 놓질 못해 상: InDic
사전어플계의 사기캐릭터. 가계부 어플 벤토이와의 경합 끝에 승리했다. 영어공부를 언제 멈추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한국인의 숙명 탓에 사전어플은 항상 고민이다. 아이폰 내장 사전을 이용하는 'InDic'은 인터넷이 필요없고, 방대한데 빠르며, 간단하고 예쁘다.

- 손에 침발라 넘기는 상: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댈, 2008)
철학 입문서, 공리주의, 자유주의 등의 이론을 설명하며 대체로 공동체주의와 부의 재분배 이야기로 귀결된다. '나와의 거리에 따른 차별을 공동체주의와 편애 사이에서 어떻게 이해할지'가 의문으로 남았다.


- 달팽이관 눈물바다 상: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이소라, 2016)
언젠가부터 예전 노래 위주로 듣는다. 새로 나온 좋은 노래를 들어보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일요일 아침 이불 속에서 테이프 하나를 통으로 듣고, 너무 좋아서 그대로 한 번 더 돌려 들었던 어린 날의 감정을 돌이키고 싶다. 요즘 노래에서는 느끼기 어렵고 예전 노래가 주는 감정은 희미해진다. 이 노래에서 그 감정을 느꼈다.


- 망막껌딱지 상: 자백(최승호, 2016)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린 화교 출신 탈북 서울시 공무원에 대한 언론인의 추적극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보도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필요한, 정말 중요한 뉴스를 보도하는 게 공영방송의 역할이다. 지금 공영방송은 언론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상태가 됐다. 공영방송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자백>을 굳이 영화로 만들 필요도 없었다”
최승호 감독

영화 마지막에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등의 행정부, 사법부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되어 고초를 겪고, 일부는 사형을 당한지 한참 뒤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길게 나온다. 앞으로 최승호 감독이 펀드레이징을 한다면 꼭 참여하겠다.



- 처음 본 그사람 상: 한기문
본부 조혈모세포기증사업 담당, 요즘은 착하다는 단어에 '자기 잇속을 챙기지 못하다'라는 엉뚱한 뜻이 실리기 쉬워 누군가를  착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지 않다. 그러나 항상 미소를 짓고, 큰소리 내지 않으며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는 기문선생님 옆에 있으면 몸과 마음이 편하다. 그를 생각하면 원뜻 그대로의 '착함'이 떠오른다.

수상소감: “별루 착하지 않은 사람을 착하다 해주셔서 감사해요!! 오히려 본부의 주변 분들이 더 착한 분들이 많아 개인적으로 더 조심한다는 것이 그렇게 보였을 수 있겠네요~ 암튼 상이란 받으면 기분이 좋네요~ 덕분에 즐거운 오전 보낼께요^^”


- The 2016 상: 광장
올해 내가 있고 싶은 곳은 광화문 광장 이었다. 특별히 무엇을 하진 않았지만, 자주 생각했다. 대학생 때 한두 차례 갔었다. 낮이 지나고 새벽이 오던 시간, 신문 한 켠의 OOO(26, 수배 중)이라는 기사, 세계화의 덫, 20대 80의 사회라는 문구, 변하지 않는 사회에서 패배감을 느꼈다. 2014년 이후 이따금 갔다. 모든 것이 잊혀지기만을 바라는 정부를 탓하기에도 목소리가 작은 유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곳은 광장밖에 없었다. 차벽과 경찰 벽에 몰려 집회인원이 조각 조각 나뉘어 경찰에 둘러쌓인 밤에는 분노와 두려움이 함께 들었다. 겨우 세종대왕상으로 돌아와 "여러분 제발 가지 마십시오!"라고 외치는 한 여성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광화문역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더 많았다면'이라는 아쉬움은 이내 '내가 좀 더 버텼으면'으로 바뀌었다. 아쉬움이 많았지만, 광장은 나에게 나를 기억하는 곳이었다.

"광장에 선 주권자들은 지독히 이기고 싶어 했고, 이길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탐색했으며, 그 과정에서 입법부라는 주권자의 수단을 결정적으로 재발견했다. 광장의 시민은 입법부를 동원해 행정부 수반에게 책임을 묻는 데 성공했다.  입법부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주권자의 도구라는 인식이 폭넓게 공유되었고, 실제로도 입법부를 뜻대로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광장의 주권자들은 헌정체제가 망가졌다고 느꼈고, 헌정을 복원하길 원했다. 이것은 체제 변동 시도가 아니었다. 체제에 대한 자신감, 체제가 주권자의 명령에 복무할 것이라는 믿음, 그러지 않을 경우 저항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위협으로 이루어진 패키지였다."
"광장의 촛불은 6월 항쟁 완결판", 시사인, 2016년 12월 23일, 제483호

정치를 도구로 쓰는데 성공한 광장. 내년의 광장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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