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 이야기
2002년 생, 전문 애견인인 큰외삼촌이 아끼는 챔피언 개가 산에서 낳아온 진돗개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후 누나가 개를 기르고 싶다고 부모님을 설득하고 얻어왔다. 월드컵 열풍을 따서 히딩크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주로 오딩크라고 불렀다. 눈이 크고 애교가 많다. 가족이라면 죽고 못살며 가족간에 싸우는걸 싫어했다. 한번은 누나와 내가 크게 싸우는데, 딩크가 옆에서 왔다갔다 안절부절하다 뒷발로 서서 앞발을 누나에게 걸쳤다. 난 그 움직임을 보고 공세에 있는 누나를 밀쳤다고 생각했고, 누나는 수세에 있는 본인을 위로해주려고 안겼다고 생각했다.
첫정이 무서운지 가족 모두 딩크를 예뻐했고, 딩크는 가족밖에 몰랐다. 딩크보다 6개월 어린 난이는 못생기고 애교도 없으며 짜증이 많고, 딩크밖에 몰랐다. 삼각관계같다고 생각했다. 당시, 하루에 몇번 씩 들리는 말이 딩크 조심이었다. 딩크는 안보인다 싶으면 발밑이나 의자밑에 누워있었다. 항상 손이 닫는 어딘가에 있었다.
개를 두마리 기르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2004년, 집안에 사정이 생겨 한마리를 포기하기로 했다. 우리는 딩크는 누구라도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딩크를 보내기로 했다. 그즈음 딩크는 밥을 잘 먹지 않았다. 새로운 주인에게 딩크를 보낸 얼마 뒤, 그사람이 연락을 했다. 딩크가 전혀 밥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허겁지겁 간 우리에게 딩크는 목줄을 끊고 달려왔다.
2008년, 딩크는 귀 쪽이 아팠다. 흔들면 물소리가 났고, 짜증이 늘었으며 토하는 일도 잦았다. 이런 저런 문제로 딩크를 계속 기를 수 있을지 고민하던 우울한 날들이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자고있던 내게 부모님이 전화하셨다. 하남시에 있는 검단산에 애들을 데리고 가서 여느 때와 같이 인적없는 곳에 풀어놨는데, 난이만 돌아왔다고 했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내가 부모님께 크게 화를 냈던 몇 번은 주로 딩크에 대한 것이었다. 그날도 딩크를 잃어버릴 수 잇는 상황을 만든 것인지, 달콤한 오전을 벼락같이 흔든 것인지에 대해 참기 힘든 화를 안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방배동에서 검단산에 갔다.
딩크를 찾지 못했다. 어두워서 비등산로를 다니기 위험할 때까지 딩크의 이름를 부르고, 울고, 소리치고, 뒤졌지만,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자마자 딩크의 이름을 소리쳤다. 고요한 산 입구에 "멍"소리가 울렸다. 흥분된 마음으로 "딩크?"하고 되묻자 다시 "멍"소리가 울렸다. '그럼 그렇지 우리가 이렇게 헤어질리가' 하는 마음과 제발 거기 있어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소리를 따라갔다. 응답이 계속되자 걱정은 점차 희열로 바뀌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강아지였다. 신발이 푹푹 빠지는 검은 진흙밭에 높이 솟은 갈대 사이로 이상하리만치 깨끗한 발로 앉아있던 새끼 강아지의 모습은 비현실적이었다. 더이상 우리의 외침에 응답은 없었다. 몸을 못 가누던 새끼 강아지를 마을과 인접한 등산로 입구에 둔 뒤, 한참을 딩크를 찾고 내려왔을 때, 그 강아지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