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계획
2020년 2월 퇴사하였다. 동종업계의 첫 직장에서 2년을 일한 뒤, 2개월의 구직기간을 거쳐 지난 회사에서 같은 직무를 맡아 7년을 일했으니, 햇수로 십 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한 셈이다.
7:30 일어나 출근한 뒤 퇴근할 때까지, 하루를 꼬박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았다. 이 건은 결재를 해줄지, 저 건은 언제 중간보고를 해야 할지, 그 건은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독심술도 없이 몇 사람의 기분과 판단을 짐작하고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다 보면, 저녁이 된다. 집에 돌아와 스트레스를 풀어줄 맵고 짜고 단 저녁을 먹고 나면, 머릿속 걱정을 내일 아침까지 달래줄 예능 한편을 채 다 못 보고, 출근을 위해 잠을 청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챗바퀴를 돌리다 퇴근을 한 뒤에는 다시 챗바퀴를 돌릴 힘을 충전했다.
가난한 사람의 일상이 사람다운 삶이 되는데 함께하고 싶다고 되뇌며 일을 해왔지만, 실제 내 삶이 사람다운 삶이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내가 한 일이라도 그러했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 역시 장담하기 어렵다. 매트릭스의 네오를 꿈꾸는 배터리의 삶이었다. 스미스 요원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도 위층에 있는 하나의 배터리 같았다. 그 위에, 그 위에도 배터리는 있었다. 스미스 요원은 사람들 관계 안에 있다. 관계를 보는 것이 서툰 나는 그 안에서 허우적 대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하루를 보냈다.
대충 고민 없이 살았다.
내가 원하는 형태의 사업을 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진 것은 3년 전이었다. 이만큼 주는 곳이 없다는 생각에 월급을 3년 더 받았고, 3살을 더 먹었다. 내 안은 일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이십대 때보다도 비어있었다. 어릴 때 운동은 젬병이어도 오래 달리기는 잘했던 나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난 인내심이 적었고 퇴사 결정은 자연스러웠다.
회사를 다니는 시간 동안, 빌라 집을 구했고, 거기 들어간 대출도 얼추 갚았으니 영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차라리 집을 위한 시간에 가깝다. 집을 구할 때 들어간 돈도 부모님께서 도와주신 부분이 더 컸던 것을 생각하면 그간의 나의 시간은 화장실 한 칸어치는 될까 싶다. 모아둔 돈으로 남은 대출을 갚으니, 불필요한 지출을 줄인다면 1년은 지낼 돈이 수중에 남았다.
향후 1년 간 나의 계획은 아래와 같다.
- 처음 6개월은 돈을 벌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머물고 싶은 곳에 존재한다.
-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주민으로써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아내는 방식을 찾는다.
- 6개월 후 위의 방식의 주변에서 내가 생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 처음 6개월 간 주 5일, 하루 한 편의 글을 작성한다. 내가 얼마나 비어있는지 깨닫고, 무엇을 채워야 할지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