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 이야기
지금까지 살면서 개를 세 마리 길렀다. 1980년대 후반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쯤, 봉천동 가파른 언덕 위 집에서 길렀던 깜돌이는 기른 지 얼마 안돼 집 뒤편 좁은 틈에 놓아둔 쥐약을 먹고 피를 토하고 죽었다. 함께한 지 몇 주 안되던 때였다. 애정이 넘치던 작고 귀여운 존재의 죽음에 서럽게 울었다.
다시 개를 기른 것은 2002년, 내가 대학에 들어간 뒤였다. 집에 수험생이 사라지자, 누나는 개를 기르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다. 월드컵의 열기로 뜨겁던 그해 만난 두 번째 반려견은 당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이름을 따서 딩크로 지었다. 그리고 6개월 뒤, 엄마는 족보가 있는 백구를 기르고 싶다며 난이를 데려왔다. 아비 개는 진도에서도 유명한 개였지만, 어미 개의 출처를 알 수 없던 황구 딩크와 달리, 백구 난이는 족보도 있었다. 새끼 때, 홀로 기차에 실려 서울로 왔던 난이는 성격이 예민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생이별하고 기차를 타고 오는 길이 무서웠을 것이라며 엄마는 난이를 안쓰러워했다. 가족들은 성격이 무던하고 예쁘장한 딩크를 좋아했고, 딩크는 우리를 좋아했으며, 난이는 딩크를 좋아했으나 어쩐지 집에서 겉돌았다. 2008년 딩크는 하남시 검단산에서 난이와 같이 놀러 갔다가 실종되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에 풀러 놓았다가 오지 않자 찾아 나섰는데, 난이만 터덜 터덜 돌아왔다. 서운한 마음에 오빠는 어쩌고 너 혼자 돌아왔냐며, 난이를 원망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속으로 난이의 마지막 순간은 꼭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딩크 이야기: https://simplehuman.tistory.com/34)
난이는 2017년까지 고양시 화정동, 방배동 이수중 근처, 방배동 내방역 근처 그리고 과천시 문원동에서 우리와 함께했다. 딩크는 아이처럼 생기 있고 매사가 궁금하며 애정이 넘치던 시간을 우리와 함께하고 사라졌다. 난이는 그 시절에도 멀찌감치 누워있다가, 서너 번 부르면 천천히 일어나 조금 가까이 오는 편이었다. 딩크에 대한 마음은 폭발하는 애정이었다. 딩크를 보고 있으면 사자의 시신을 먹음으로써 영혼이 함께하길 바라던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의 카니발리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난이와의 관계는 의무와 습관 그리고 애정 사이의 어느 지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난이는 나이가 들어갔다. 사람보다 5배 정도 빠르게 흘러가는 개의 시간은, 생의 마지막 시간에는 매일이 달랐다. 나이가 들었음을 달력으로만 알았던 어제에서, 걷는 게 불편한 오늘이 되었고, 그다음 날은 계단 내려가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난이는 갈수록 예뻐졌다. 일어나지 못해 누워있는, 몸 여기저기 진물도 많은, 눈이 뿌옇게 변해 날 볼 수 있는 것인지 모를 난이가 깡총거리던 어릴 때보다 더 예쁘게 느껴지는 것이 신기했다. TV에서 젊었던 자신을 무던히도 괴롭혔던 시부모가, 이제 나이 들어 밥 먹는 것조차 내가 돌봐야 하는데도, 시부모가 너무 예쁘다던 누군가의 모습이 불합리한 가정의 모습을 조장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이가 사랑스러워지게 되자, 난이의 눈으로 세상을 상상하게 되었다. 세상이 누군가에게 속해있지 않은 개를 어떻게 대하는지, 밖에 나가기가 어려워 누워 지내는 노인의 하루는 어떠한지 상상해보았다. 레미제라블 미리엘 주교의 아름다운 노년이 떠올랐다.
2017년 9월, 아빠 건강이 급하게 안좋아졌다. 18일에 밤에 응급실에 들어갔고, 19일 새벽 3시 집중치료실로 이동했다. 그때부터 24시간 간병이 필요해졌다.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아빠가 하던 가게를 대신이나마 볼 사람은 엄마뿐이었고, 누나는 이제 막 둘째를 낳아 산후조리원에 있었다. 내가 아빠 옆에 있기로 했다. 당시 난이는 누운 상태에서 몸을 일으킬 수도 없어 욕창으로 골반의 뼈가 보였다. 때때로 상처를 소독하고 반대로 누이는 것이 유일하게 난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한 자세로 오래 누워있으면 난이는 낮은 소리로 신음을 질렀다. 난이는 그렇게라도 살아있음을 알렸다. 그것이 지금 우리와 난이의 함께하는 삶이었는데, 선택을 해야했다. 우리는 난이를 안락사하기로 결정했다.
2017년 9월 19일, 나는 집에 가서 누워있는 난이에게 물을 먹였다. 바늘이 없는 주사기로 입안에 물을 넣어주면, 혀로 꿀떡 꿀떡 넘기며 마시는데, 여느 때보다 많이 먹였다. 그리고 난이를 안아 잠시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고, i30 보조석 밑에 종이박스를 깔고, 난이가 쓰던 이불을 깔고 베개를 받쳐 하남시에 있는 동물병원에 갔다. 하남시는 딩크가 사라진 곳이었다. 이미 연락을 해둔 병원 직원을 만나 진행하려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주사기에 약이 들어가고, 난이는 한 바가지의 오줌을 남기고 고요해졌다. 근처 반려동물 장례업체에 화장을 하러 가니, 직원은 난이의 시신을 정리해서 인사를 하라고 보여주었다. 눈을 감은 난이는 이제껏 봐왔던 모습 중에 가장 예쁜 모습이었다. 화장을 마친 뒤, 난이 유골함을 들고 돌아왔다. 유골함은 따뜻했다.
난이의 유골은 한동안 증산동 집에 있다가 부모님이 나중에 계실 선산 묫자리 옆에 묻어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쁘다. 사랑하고 받는 게 좋다. 나이가 들수록 이쁘다. 꼭 비슷한 나이 때의 이성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