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반려견, 한숨

simpleksoh 2020. 3. 13.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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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는 살아있을 때, 집에서 똥오줌을 누지 않는 아이였다. 난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 덕양구 화정동은 공원이 많았다. 당시 집 바로 앞에도 수풀과 구릉, 운동장과 놀이터가 있고 천천히 한 바퀴를 돌면 십오 분은 걸리는 공원이 있었다. 별생각 없이 나가 바람을 쐬고 별을 보기 좋은 곳이었고 그럴 때 개는 함께 있으면 좋은 동행자였다. 지금도 그때 잔디밭을 뛰어다니던 어린 딩크와 난이가 기억난다. 나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그러했으니, 딩크와 난이는 굳이 집에서 일을 볼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 우리는 방배동으로 이사를 갔다. 진돗개가 둘이나 포함된 우리 가족은 마당이 있는 집을 구해야만 했다. 그곳에 살 때, 딩크가 사라졌다. 그리고 방배동에서 이사를 한번 다 했고 부모님께서 노후를 생각해서 과천시 문원동으로 갔을 때, 난이는 열두 살이었다. 난이는 여전히 새침하고, 굳이 사람에게 애교를 부리는 친구가 아니었으나, 당연히도 산책을 가자는 소리만 하면, 어느새 다가와 까만 코로 내 다리를 문질렀다.

 

문원동은 드문 드문 서있는 빌라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고, 건물 사이 사이로 빈 땅에 주민들이 소일거리 삼아 밭작물을 기르는 동네다. 개랑 산책을 다니는 것이 참 자연스러운 동네다. 당시, 부모님은 가게를 저녁 8시까지 보셨고, 나는 퇴근 후에 집에 오면 8시, 누나는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다. 산 밑으로 어둑해진 길을 걸으며, 난이가 집에서 똥을 누지 않는 것에 짜증이 내곤 했다.

 

그러던 주말 즈음이었다. 난이 아침 산책을 도맡아 하시던 아빠가, 아침에 난이가 똥을 누지 않았다며, 늦지 않게 나가야 한다고 하셨다. 귀찮았다. 이럴 때, 난이는 볼일이 급하면 와서 낑낑 댄다. 그날 난이는 점심때까지 조용히 앉아있었다. 난이는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였으나, 볼일이 급하지 않으면 굳이 와서 나가자고 하지는 않았다. 점심 즈음에 언듯 난이 볼일 생각이 나서, 난이에게 나갈까라고 물었다. 난이는 고개를 들고 눈을 반짝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몸을 일으키기가 귀찮아서 난이에게 그냥 다음에 가자고 말하였다. 난이는 '후'하고 한숨을 내쉬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반려동물을 길러본 사람은 안다. 그들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종류를 모두 가지고 있다. 심지어 오랜 시간을 보낸 집안 안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상황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아마도 그때 난이는 내가 아니면 열 수 없는 저 문, 산책하다 몇 번 도망간 뒤 우리와 헤어져서 실컷 놀다 혼자 집에 왔을 때 도저히 혼자서는 열 수 없었던 저 문, 그래서 밥을 먹고 물을 먹고 엄마를 만날 수 있는 이 집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내가 목줄을 들고일어나 열어주었을 때만 나갈 수 있는 저 문을 열어주지 않는 내게 화가 났을 것이다. 그렇게 밖에 나갈 수 없는 본인의 상황에 낙담했을 것이다. 개에게 지금의 세상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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