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책]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박준, 난다)

simpleksoh 2026. 7. 2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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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산문을 좋아한다. 시는 이해하기에 난해해서 음미하기 어렵지만, 시인이 자신의 사유를 투박하고 쉽게 늘어 쓴 글을 읽다 보면, 그 신선함에, 날카로움에 머리가 상쾌해지곤 한다. 이렇게 말한 것 치고는 몇 편 읽지도 않았고, 김수영의 산문은 10년째 읽고 있지만, 그래도 시인의 산문을 좋아한다.

 

박준 시인은 내가 퇴사를 하고 시간이 많던 2020년에 라디오를 듣다 알게 되었다. 2020년도에 시인이 있다니, 시인이 라디오에 나오다니, 시인이 라디오를 진행하다니 하는 생각을 했다. 라디오를 듣는다는 취미가 그 자체로 자못 구시대적일 수 있다는 생각도 못한 채, 시인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듣는다는 걸 신기해했다. 시인은 시를 한 편 읽어주고,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사연을 읽고, 사연에 어울리는 시를 읽어주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심야시간에 깨어있는 일이 적어졌지만, 한참 글을 많이 쓰던 그때, 자정에서 2시까지 했던 CBS 라디오의 '시작하는 밤 박준입니다'를 자주 들었다. 덩달아 그 라디오를 같이 듣던 짝과 나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심야라디오를 듣는 일이 늘 그러하듯, 나의 일상은 바뀌었고, 듣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자정을 넘어 라디오를 켰을 때 들리는 다른 목소리에 우리는 적잖이 실망하였다. 그렇게 박준을 잊고 살다가, 얼마 전 문득 마음이 힘들 때, 그의 라디오가 듣고 싶었다. 그러다 내가 그의 산문집을 읽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56p 다만 나 자신을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는 순간만은 잘 알고 있다. 가까운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않을 때 좋음은 오지 않는다. 내가 남을 속였을 때도 좋음은 오지 않지만 내가 나를 기만했을 때 이것은 더욱 멀어진다.

 

89p 대부분의 연애는 상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자라나 있을 대 시작되는 것이므로 연애의 시작은 사랑의 시작보다 늘 한 발 늦다.

 

138p 불친절한 노동-전편을 싣지는 못하지만 아버지와 가난에 대한 이야기는 쉬이 잊히지 않았다. 이 글을 읽던 날, 친구 일수의 추모제가 있었다. 그는 서울역 맞은편 동자동 쪽방촌 방 한 칸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3명이 채 앉을자리도 없는 좁은 집, 그는 그곳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고 했다. 음악을 좋아해 고등학교 때 실용음악과에서 드럼을 배웠지만, 돈이 많이 드는 음악을 계속할 수 없었던 그는 대학에서 보건복지과를 전공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로 불리는 동자동에서 나고 자란 그는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어 사회복지사를 꿈꿨다. 그러나 번듯한 직장을 가지면 사랑하는 아버지는 부양의무자제도에 걸려 기초수급자 자격을 박탈당한다고 했다. 사회복지사 대신 활동지원사의 일을 시작한 그는 근무지에서 알게 된 당사자 활동가와 결혼을 했다. 신접살림을 시작한 곳도 동자동 쪽방촌이었다. 부인과 아이를 데리고 그를 잘 알고 아껴주시는 아버지의 친구들이 있는 동자동사랑방에 인사를 가던 날, 그는 생애 가장 큰 행복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3인가족이 되어 임대주택 선발이 유리해진 그는 곧 강서구 아파트에 위치한 임대주택을 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시절부터 그를 괴롭혀온 당뇨병 합병증에 따른 시각장애가 악화되어 거의 전맹 상태에 이르렀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이 즈음이었다. 시각장애인이 사용하기에 아이폰이 낫다고 하던 그에게 사용하지 않는 아이폰을 선물하고자 그의 집을 처음 간 곳이 그 아파트였다. 며칠 후 만난 그의 휴대폰이 내가 준 것과 달라서 휴대폰을 왜 사용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수줍게 웃으며 가족을 주었다고 했다. 항상 아이 이야기를 하던 그는, 내게도 아이가 생긴 후에는 전화를 걸어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아이랑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더 많이 이야기하곤 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가 이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동자동으로 돌아갔다고. 그래도 그는 쇼다운이라는 시각장애인 스포츠를 한다며, 아랫마을에 다시 돌아갔다며, 자신의 일상을 밝게 전해주었다. 전화를 할 때마다 10만 원씩 돈을 빌릴 수 있는지 묻곤 했는데, 빌리고 갚고 하던 그가 채 갚기 전에 한번 더 빌릴 수 있는지 물었을 때, 나는 돈은 갚고 나서 다시 빌려주겠다고 하였다. 몇 번 전화를 더 받곤 했지만, 그렇게 연락은 끊어졌다. 그 뒤로도 그는 안마사 자격도 준비하고 혹은 따고, 지인들과 열심히, 즐겁게 살았다고 했다. 가난이 그를 지긋지긋하게 발목을 잡으려고 해도 꿋꿋하게 선한 싸움을 해온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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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에서 보낸 20대 ... 그에게는 극복할 수 있는 가난 < 사회 < 기획 < 기사본문 - 고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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