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아듀 2021 상

simpleksoh 2021. 12. 2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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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2021 상
올해를 정리하며 개인적인 '아듀 2021 상'을 선정했습니다. 각 부문 수상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손에 침발라 넘기는 상] - 책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 우리는 양동에 삽니다,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후마니타스, 2021

 

양동주민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아랫마을 사람들과 함께 듣고 정리하여 올해 이 책으로 엮어냈다.

 

1978년 9월, 서울역 맞은편 양동이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약 40년간 개발은 진행되지 않았고 그동안 '양동' 일대의 명칭은 '남대문로5가'로 바뀌었다. 2020년 1월 '양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정비계획 변경안이' 통과되었다. 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던 11, 12 지구는 "쪽방입지", "저층주거 다수밀집"을 이유로 소단위정비지구와 소단위관리지구로 지정되었다. 멈춰있던 재개발이 진척을 보이던 즈음 양동에 사는 주민이 쫓겨난 후, 쪽방 건물이 폐쇄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쪽방 주민과 주거권 관련 시민사회 단체는 2019년 말부터 폭력적 민간개발과 책임을 방기하는 지방자치단체를 규탄하며 집회, 문화제, 기자회견 등을 열어 투쟁했다. 2020년 4월부터는 주민 자치 모임도 결성됐다. 그 결과, 지난 6월 11, 12지구의 개발계획이 변경됐다. 쪽방 주민에게 영구 임대주택 182호를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비마이너, 2021.12.09)

 

2016년 여름, 회사의 '자기계발비 60만 원'으로 서울역 앞 동자동 쪽방 월세 3개월 치를 냈다. 쪼그려 앉는 변기는 적응하기 어려웠고, 변기 옆에서 주춤주춤 샤워하는 게 힘들어 회사 앞 헬스장으로 출근했다. 필요 없는 야근을 하고 집에서는 잠만 잤다. 퇴근길에 자주 만나서 친해진 주민분과는 어느새 멀어졌다. 그 3개월은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책상 앞에서 이러니저러니 말만 하고는, 정작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 후, 마음이 뛰는 단어들을 찾다 아랫마을에서 '증인'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비빌 언덕이 없는 사람들이 누구나 하는 한두 번의 실수로, 혹은 어떤 실수도 없이, 누구나 피하고 싶은 비참한 매일의 차별적 현실에 직면하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피할 길 없이 증인이 된다. 증인은 증언의 의무가 있다.

 

[마그네틱이 떨려요 상] - 구매
디지털 손목시계. 핸드폰이 있어도 '요일과 날짜'가 나오는 '가볍고 차지 않은 것 같은' 손목시계를 찾게 된다. 1989년에 처음 나온 시계를 이제 만났다.

 

* 승아가 여러 조건(검은색, 민무늬, 가슴께에 손을 넣는 주머니, 내 눈에 예쁠 것)을 맞춰 3만 원대에 구매해준 케이스위스 롱패딩은 아쉽게 수상에 실패했다.
 
 
[손에서 놓질 못해 상] - 어플
클로바노트

음성기록관리 서비스. 녹음 파일을 텍스트로 변환해준다. 녹취록 작성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준다.

 

[달팽이관 눈물바다 상] - 노래
발라드, 이주영(2021)
이주영의 노래를 듣다가 나도 그처럼 멋지게 내 이야기를 노래해보고 싶어졌다. 일어나 방구석에 놓인 피아노를 쳐봤다. 내 손으로 눌러내는 '환희의 송가' 멜로디는 아름다웠다. 다음 연습은 전자키보드를 사고 나서 해보기로 했다.

 

[처음 본 그 사람 상] - 인물
A
그는 노래 부르기와 그림그리기를 좋아한다. 2016년 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 입주했고 2021년 10월 자립을 시작했다. 올해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일상의 대부분을 노들야학에서 보내고, 주거 환경도 일견 '그만하면 괜찮지'싶다. 그러나 그는 독립하고 싶어 했다. 그는 종종 "코디쌤 트럭 부를 거야?"라는 말로 이사할 수 있는지 넌지시 확인하곤 했다. 2021년 내내 그는 사람들에게 옷은 어떻게 가져가고 농은 가져가도 되는지, 컴퓨터는 어떻게 할지, 열쇠는 새로 하는지 질문했다. 자신의 집에 지인들을 초대하여 밥을 먹고 싶어 했다.

 

2015년, 내가 독립하겠다고 할 때 부모님은 나를 거세게 막았다. 그래도 나는 나왔다. 부모님을 좋아하지만, 한밤중에 야식을 먹어도, 밤을 새워 드라마를 봐도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10년간의 시설 생활을 끝내고 5년간의 자립생활주택 생활을 마친 그는 "혼자 있으면 외로워"라면서도 혼자 사는 지금 집에 만족하는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의 집은 방음이 잘 안되어서 간혹 집주인에게 그가 노래를 부른다는 항의를 받는 점이다. 그의 다음 집은 지금보다 방음이 잘돼서 적어도 노래를 흥얼거릴 수는 있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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