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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코로나, 거리

by simpleksoh 2020.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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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1

 

2019년 12월, 첫 환자가 발견된 뒤 2020년 3월 18일까지 전 세계에 확진자 20만여 명, 사망자 8천여 명을 발생시킨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낯선 현상을 가져왔다.

 

누군가와 만나지 않는 것이 상식이 되었고, 어쩔 수 없이 만날 때는 얼굴을 가리고 피하는 것이 예의가 되었다. 다른 이의 집에 가는 것은 금기가 되었고, 나중에 밥 한 끼 하자는 말 대신 상황이 좋아지면 보자는 말로 타인과 나의 관계를 부담 없이 무기한 연기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인간 사이의 거리두기'와 다름없지만, 보다 가치중립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이 주는 불쾌함을 피할 수 있으며 공식적인 규범의 성격을 담기도 쉽다. 그러나 그 실상은 '인간 사이에 거리를 두는 사회'라는 형용 모순어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거리는 각자의 그리고 공동체의 안전을 보장하는 물리적 거리다. 구태여 타인을 만나지 않고, 불가피하게 만난다면 비말이 닿을 수 있는 안전거리 밖에 존재하여야 한다. 분명 서로를 위하여 스스로를 격리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실상은 누구를 만나지도 대화하지도 않는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 이방인의 삶과 유사해지고 있다.

 

 

 

거리 2

 

서울시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시민들을 위해 시행하는 '재난 긴급생활비 지원' 대상에 해당함을 알았다. 올해 3월부터 내 소득은 0이 되었고, 우리 가구의 소득은 지원 대상에 포함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동안 생계, 의료, 주거, 교육의 사회안전망 중 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공공부조를 받은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생활비 지원 대상에 해당하는 것을 알았을 때 처음 든 기분은 씁쓸함이었다. '나는 받는 사람이 되었다.'라는 생각은 불쾌했다.

 

현대의 빈곤이 자본주의의 모순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빈곤은 개인의 책임보다 제도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전면 무상급식을 지지했고, 기본소득에도 찬성한다. 그러나 그 입장은 내가 받는 사람이 아닌 주는 사람이었을 때 가진 입장이었다. 그동안 난 사회안전망의 잠재적 대상자가 될 수 있는 시민의 일원으로서 판단했지만, 실제 대상자가 되어본 적도 그런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십 년 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위했지만, 실상은 구경꾼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간 얼마나 많은 자리에서 나는 가난을 좋아한다고 떠들었던가. 내가 가난한 사람들과 설정한 거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우리는 소위 문화인류학이 식민주의의 첨병으로서 세계의 수많은 민족을 대상화하여 그들의 민속과 전통문화 그리고 그들의 정직한 인간적 삶을, 자기들의 그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기들의 침탈을 다른 이름으로 은폐할 목적으로, 야만시하고 왜곡해왔으며, 그러한 부당한 왜곡이 결국은 대상의 상실뿐 아니라 자신의 인간적 양심을 상실케 함으로써 그토록 잔혹한 침략의 세기를 연출해내었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중략)

 그리하여 발견된 범죄 인종의 여러 가지 패륜은 그들 자신과는 하등의 인연도 없는, 수십만 년의 거리가 있는 것이란 점에서 그들 자신의 윤리적 반의를 자위하고 두호하고 은폐하는 데 역용됨으로써 결국 그들 자신을 패륜화하는 악순환을 낳기도 합니다. 시대와 사회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처한 위치가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은 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의 출발은 대상과 내가 이미 맺고 있는 관계의 발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검은 피부에 대한 말콤X의 관계, 알제리에 대한 프란츠 파농의 관계······ .

 주체가 대상을 포옹하고 대상이 주체 속에 육화 된 혼혈의 엄숙한 의식을 우리는 세계의 도처에서, 역사의 소시에서 발견합니다. 이러한 대상과의 일체화야말로 우리들의 삶의 진상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보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 신영복 옥중서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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