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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피에르 쌍소/김주경 옮김, 동문선, 2000)

by simpleksoh 2024.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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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파스칼의 말대로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휴식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온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불행을 자처하고 있지는 않는가? 출간되자마자 프랑스 논픽선 부분 1위. 피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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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철수는 오늘' 코너에서 걷기에 관한 프랑스 철학자의 글을 소개했다. 그 글이 인상 깊어서 책을 찾아보니, 느림의 철학자라 불리는 피에르 쌍소가 쓴 'Du bon usage de la lenteur'라는 책이었다. 작년에 새로운 번역본이 나온 것이 있어, 도서관에서 빌려보니 잘 안 읽혔다. 내가 읽기에는 글의 흐름이 뚝 뚝 끊겼다. 2000년에 나온 번역본이 있어 다시 빌려보니, 단어나 문장이 지금에 와서는 좀 예스럽긴 했지만, 나한테는 이 번역본이 더 잘 맞았다.
 
p.13
느림이라는 태도는 빠른 박자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p.43
사실 한가롭게 거닐 때 느끼는 행복은 우리의 시선을 통해 발견되는 것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걷는 행동 그 자체에서, 자유로운 호흡 속에서, 그리고 아무것도 기분을 거슬릴 것이 없는 시선 속에서 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을 누리는 것이 정당한 일이기나 한 듯이 세상 안에서 느끼는 여유로움 속에서 오는 것이다.
 
p.62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이면서도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그 점은 수정할 필요가 있다. 말을 하는 쪽은 대개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새로운 특권을 누리고 있는 자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듣는다는 것은 명령을 듣고 그 명령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말을 하는 권리보다는 의무를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p.88
우리로 하여금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 하나도 없고, 가능한 것도 전혀 없는 상황, 그래서 더 이상 아무것도 기다릴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이 과연 존재할까? 그럴 때 인간은 완전한 좌절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p.144
느림과 '변모에 대한 열정'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느림은 우리가 한 사람, 하나의 풍경, 하나의 사건을 시험해 볼 기회를 제공하며, 시간이 이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단지 이들을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들이 변모하는 과정을 추적해 보고자 하는 바람에서이다. 예를 들면 연못의 어두운 물과 밤(夜)이 뒤섞일 때,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 앞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밤의 얼굴을 지켜본 적이 있는가. 현대는 이런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지속'을 위해서 현대가 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현대에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수많은 사물과 사건들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이들의 존엄성을 배려한다면, 이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이들이 저절로 사라지게 내버려 두거나 아니면 직접 없애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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