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김수영의 산문집을 읽는데, 그 중 '김이석(金利錫)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라는 글이 있었다. 글에 나오는 김이석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찾다보니, 1964년에 사망한 소설가 김이석의 아내인 소설가 박순녀가 얼마 전에 손녀를 돌보던 1년 동안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다는 것을 알았다.
p.99
"단비야 엄마 찾니?"
내가 물었다.
단비가,
"엄마!"
목소리를 더 높였다. (중략) 그러니까 고모 집에 가자는 것도 슈퍼에 가자는 것도 탁아소에 다시 가자는 말이라는 걸 겨우겨우 나는 알았다. 그런데도 할머니가 탁아소로 도로 데려가 주지 않는다.
그때 단비의 깊은 잠재의식 속에 엄마가 떠오르고, 그 엄마하고 쌓은 믿음이 단비로 하여금 엄마한테 탁아소로 가고 싶다고 호소하게 한지도 모른다. "엄마, 엄마!" 하고.
p.322
내 남편인 김이석 선생님, 당신의 딸 양하의 딸이 단비입니다. 당신이 양하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한지를 나는 압니다. 너무 어렸던 양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압니다. 어느 눈이 많이 쌓인 날입니다. 당신이 눈이 쌓인 우리 집 대문 앞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술을 너무 마셨던 거지요. 그런데 정신이 없는 당신의 꼬옥 쥔 손바닥에 알사탕 몇 개가 있었습니다. 양하 주려고 산 거지요.
당신이 밖에 나갔다가 올 때는 꼭 그 손에 뭔가가 있었습니다. 양하 준다고. 절대로 빈 손으로 오는 일이 없었지요. 나는 단비를 당신이 눈속에서도 놓지 않고 꼭 쥐고 있었던 그 눈사탕처럼 키웠습니다. 단비가 그날을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그 애가 당신이 우리에게 심어준 '무엇으로 사는가' 그 정신을 잊지 않고 살아주기만 하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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