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정리하며 개인적인 '아듀 2017 상'을 선정했습니다. 각 부문 수상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 마그네틱이 떨려요 상(구매): 미니 수염 틸란드시아
온라인으로 삼 만원 쯤 주고 여섯 개를 샀다. 올해 이사를 한 뒤 창문을 열었는데, 폭죽처럼 퍼지는 검은 먼지에 놀라 구입했다. 식물을 기르는데 익숙치 않아 절반만 살아남았다. 성능은 미지수지만 심리적인 효과는 100점 만점에 99점이다.
- 손에서 놓질 못해 상(어플)카카오뱅크
난 카카오톡을 싫어한다. 기다리는 연락이 없어도 습관처럼 대화창과 채널을 오가기 일쑤다. 어플을 키고 뭔가를 한다는 느낌도 없이 숨쉬듯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되지만 내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카카오뱅크는 그 연장선에 있다. 케이뱅크와 비교해도 속도와 편이성이 월등하다. 통장의 잔액을 떨궈 틈틈이 자유적금으로 보내기에 그만이다. 새마을금고 ATM에 카카오 카드를 넣고 출금버튼을 누르는 순간, ATM화면에 수수료가 뜨겠지만 실제로는 청구되지 않을테니 마음 놓고 출금하라는 문자를 잊지 않는 세심함도 보여준다.
- 손에 침발라 넘기는 상(책): 파울루 프레이리. (2009). 페다고지 (남경태 옮김)
교육철학서, 우리 사회, 지구에 현존하는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책을 세 번쯤 볼 때는 알았으면 좋겠다.
“침략의 포기는 곧 (외국인처럼) 군림하거나 내면화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동료로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는 내게 공간이 아니라 범위가 된다. 즉 내가 적응할 수밖에 없는 육중한 현재로 강요되는게 아니라, 내가 행동하는 것에 따라 형성되는 영역인 것이다.”
- 달팽이관 눈물바다 상(노래): 우효 민들레
집에서 라디오를 많이 듣는 편이다. 멜로디가 아름다운 노래를 좋아하는데, 언제가 나온 이 노래를 계속 반복해 들었지만 기억나는 가사는 이 것 뿐이다.
“어서 와요 그대, 매일 기다려요, 나 웃을게요 많이, 그대를 위해 많이, 많이 웃을게요”
- 망막껌딱지 상(영화): 이터널 선샤인(2004)
이 영화를 다시 본 것은 영어 때문이다. 자막 없이 영화를 100번 보면 귀가 트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영화를 봐야 하나? 영국 발음은 잘 안들리니까 미국 영화 중에, 너무 좋아하는 영화는 질리면 안되니까 패스, 여러 번 보려면 추리 영화가 좋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100번을 봐도 좋겠다 싶은 영화는 ‘이터널 선샤인’이었다. 13번 밖에 보지 못했지만 또 보고싶다.
- 처음 본 그사람 상(인물): 김민준
둘째 조카. 개를 기를 때 어렴풋이 느꼈는데, 조카가 생기고 보니 확신이 들었다. '첫 정이 무섭구나.' 부모님이 누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은 느낌이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둘째 조카에게 동료의식이 생겼다.
- The 2017 상: 19대 대선
17대 대선은 시작 전에 결과를 알 수 있었다. 2위 후보의 두 배에 가까운 득표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다. 난 군대를 막 제대한 참이었다. 원하지 않는 대통령이었지만 내 앞길이 급했다. 사회복지철학 수업 중에 교수님께서 시위 현장에 나간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한 두명 정도가 손을 들자 “요즘 시위는 누가 하나?”하신 말씀에 나간 광장에서는 씁쓸함 기억이 남았다.
친구들과 축배를 들 생각으로 수육집에서 본 18대 대선방송의 주인공은 박근혜 전대통령이었다. 상실감은 있었지만 그가 대과 없이 무사히 임기를 마치기를 기대했다.
광화문의 어느날 밤, "여러분 제발 가지 마십시오!"라고 외치는 한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더 버티지 못하고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는 내가 부끄러웠다.
처음으로 5월에 치뤄진 19대 대선 결과는 보기만 해도 좋았다. 여전히 비정규직, 여성, 노인, 외국인 노동자에게 차별적인 문화가 기세 등등하고 인터넷에서 몰려다니며 행패를 부리는 사람이 있어 한숨이 나오지만 그래도 토요일에 별일 없이 쉴 수있는 요즘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