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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을 생각하며

by simpleksoh 201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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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한 L 형님이 베트남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L 형님은 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났습니다. 착하고 유쾌한 L 형님은 당시 우크라이나 여성과 결혼하고 싶어 했습니다. 난 그의 여성취향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사소통이 안되는 예쁜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것이 우스워 보였습니다. 졸업 후에, 형님이 한국, 베트남 등지의 여성과 결혼을 시도하고, 연이어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님의 여성취향을 기억하고, 그 실패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형님이 아픈 노모를 모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 후였습니다. 항상 간병인을 두어야 할 상태지만, 경제적 부담이 있어 주중 퇴근 후와 주말에는 형님이 한다고 했습니다. 형제가 있지만 형님이 혼자 부양한다고 했습니다. 형님의 결혼 실패를 우습게 생각했던 것이 죄송했습니다. 다시 시간이 흘렀고, 40대 중반의 L 형님은 20살의 베트남 부인을 데리러 베트남에 간다고 했습니다.

이제 베트남 빈민가의 한 가정을 보려고 합니다. 가족은 다섯 명, 두 명의 부모와 딸 하나, 아들 둘입니다. 다른 사람의 땅을 소작하는 이 가구는 가난합니다. 장녀 뚜앙씨는 의무교육으로 초등학교만 마쳤습니다. 부모는 둘째와 셋째 아들만큼은 어떻게든 대학교에 보내고 싶습니다.

뚜앙씨가 스무 살이 되던 해, 하노이의 성혼업체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가 딸 뚜앙씨의 미모가 출중하니, 본인이 책임지고 한국인과 결혼시켜 호강시켜주겠다고 했습니다. 일단 맡겨주면 300달러를 주고, 결혼이 성사되면 500달러를 더 주겠다고 했습니다. 부모는 그에게 딸을 맡겼습니다. 지역 모집책이었던 그는 뚜앙씨를 하노이의 알선책에게 500달러를 받고 넘겼습니다. 뚜앙씨가 결혼하면 모집책은 알선책으로부터 500달러를 더 받습니다. 뚜앙씨는 하노이 알선책이 소유한 기숙사에서 15명의 동료 예비 신부들과 함께 지내게 됩니다. 외출은 물론 생활 전반을 통제받으며, 가끔은 살이 찐다는 이유로 밥을 안주기도 합니다.

이번엔 한국의 한 농촌을 보겠습니다. 농업인 천식씨는 노총각입니다. 한국인과의 결혼을 포기하고, 외국인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동네에 많은 베트남 여성들을 보면 못할 것도 없다 싶어, 국제결혼대행업체를 찾았습니다. 비용은 2,000만원, 항공료, 체제비 그리고 지참금을 포함한 금액입니다. 한국에서 결혼할 때 드는 비용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천식씨는 바로 계약을 했고, 결혼업체는 사전 정보라며 사진이 포함된 20명의 개인 프로필을 주었습니다. 천식씨는 명단을 검토하며 예비결혼동기 4명과 함께 비행기를 탔습니다.

주어진 일정은 34, 두 번의 단체 맞선, 결혼식 그리고 신혼여행이 포함된 일정입니다. 한국에서는 꽤나 친절하게 설명하던 결혼업체 직원이 여기서는 자꾸 재촉합니다. 몇 번의 결혼이주자 살해사건으로 베트남 정부의 감시가 심해졌습니다. 두 번의 맞선 안에 신부감을 골라야 하는 천식씨는 심정이 불편합니다. 마음이 불안하기는 뚜앙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기숙사에 온지 다섯 달이 지났습니다. 이 좁은 곳에 갇힌 생활에 신물이 납니다. 베트남 여성의 평균 결혼연령인 24살보다 4살 적기는 하지만, 자신보다 어리고 예쁜 친구들이 먼저 이곳을 벗어나는 것을 보니 자신은 평생 이곳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것인가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번에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마음에 들고자 다짐합니다.

첫째 날, 첫 번째 맞선이 끝났습니다. 천식씨도 뚜앙씨도 짝을 찾지 못했습니다. 바로 두 번 째 맞선이 시작되고, 직원은 마지막 기회임을 강조합니다. 마음이 급한 천식씨는 뚜앙씨 얼굴을 보고, 가슴을 보고 몸매를 가늠해봅니다. 더 알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천식씨가 미소를 짓고, 뚜앙씨도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직원이 웃습니다.

둘째 날, 인근 공원에서 연애관계를 증명할 연애사진을 찍습니다. 직원을 따라 병원에 가서 혼인신고에 필요한 신체검사서도 받습니다. 관례상 급행료를 내면, 에이즈나 정신질병에 관한 검사까지 업체가 알아서 해줍니다.

셋째 날, 결혼사진을 찍고 인근 관광지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천식씨는 혼자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3개월 뒤, 혼인신고를 한 후 결혼증명비자를 받으면 뚜앙씨를 데리러 돌아올 예정입니다. 그때 추가로 1,000만원을 한국 업체에 더 지급해야 합니다.

천식씨와 뚜앙씨의 결혼에 대한 이해관계자는 여섯 입니다. 뚜앙씨 가족, 한국 업체, 하노이 알선책, 지역 모집책 그리고 천식씨와 뚜앙씨.

뚜앙씨 가족은 92만원(1USD = 1,150 KRW))을 받고, 딸을 주었습니다.

한국 결혼대행업체는 운영비로 1,000만원을 받았습니다.

하노이 알선책은 기숙사 운영비, 맞선 경비 등에 대하여 977만원을 받았습니다.

지역 모집책은 80만원을 받았습니다.

나머지 851만원은 항공료 및 기타 운영비로 사용되었습니다.

천식씨는 3,000만원을 주고 신부를 구했습니다. 뚜앙씨는 무엇을 얻었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L 형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베트남에 돌아가서 형수님을 잘 모시고 왔고, 그냥 뭐 좋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형수님께 잘하시라는 말을 하려다,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심으로 축하만 드렸습니다. 형님 카톡 프로필은 toi muon den vietnam, ‘나는 베트남에 가고 싶습니다.’ 이었고, 이후 아이가 태어난 한참 후까지 프로필 사진은 형수님이었습니다.

타인에 삶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결혼에 대해 당사자보다 다른 이의 의사가 앞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새 2년 동안 살 집을 구하기 위해서 지난 한달 간 주 2회 부동산을 보고 있습니다. 어제도 다녀왔고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한시간만에 이루어진 결혼의 두 당사자의 행복은 너무나도 운에 달려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운이 없는 사람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본 글은 픽션과 논픽션이 섞여있으며, 경인일보의 2010년 기획기사 '악몽이 돼버린 코리안드림'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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