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

장애인 자립생활주택 퇴거자 A의 성묘 동행기

by simpleksoh 2022. 4. 12.
반응형

장애인자립생활주택 퇴거자 A의 부모님 성묘에 동행했다.

 

산소는 충남 서천군 문산면 북산리에 위치한 산 중턱에 있었다. 활동지원사 B가 A의 전동휠체어를 뒤에서 밀었다. 산소에 도착한 우리는 간단한 제사상을 차렸다. 어머님 산소에 술을 올리고 절을 한 뒤 돌아앉은 A에게 아버님 산소에는 절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A는 잠시 주춤하고는 아버님 산소에도 절을 했다. A는 산 아래 마을을 내려다보며, 어릴 때 여기서 농사를 지었다고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 북산리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A는 1973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와 다른 가족의 결정으로 서울 종로구 소재 시설에 입소했다. 이후 A는 몇 건의 폭행 피해자가 되었고, 몇 번 시설을 옮겼다. 2016년 A는 A의 몫이었을 수급비 일부를 손에 쥐고 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 들어왔다. 같은 시설에 있다가 먼저 나온 선배 퇴소자가 있는 곳이었다. A는 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서 5년을 머문 뒤, 2021년 9월에 임대주택을 얻어 지역자립을 했다. 10살 무렵 시설에 들어간 지 50년이 조금 안 되는 시점이었다. A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내 맘대로 살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그리고 활동지원사가 없는 시간이면 홀로 견뎌야 할 밤을 두려워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A는 살아온 시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설에서 만난 사람 중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자립생활센터에서는 박**, 최**, 민** 등 최근에 만난 여성 활동가를 몇 명 기억했다. A가 일상에서 입 밖으로 주로 꺼내는 사람은 2016년 미국 혹은 호주로 떠난 누나와 2020년 사망한 형의 부인인 형수 두 사람이다. 떠나간 누나는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고, 2019년 마지막으로 찾아온 형수는 2020년 전화로 형의 부고를 전한 뒤 더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A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누나 그리고 형수와 연락할 방도를 물었다. 결혼한 자식에게 아직도 반찬을 더 가져다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는 부모님과 매번 전화로 투닥거리는 나는 A에게 옆에 있는 동료나 활동지원사와 무슨 재밌는 활동을 할지 생각하는 것이 연락을 끊은 원 가족을 찾는 것보다 낫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A는 자기 생각에는 누나나 형수가 연락을 끊은 것이 아니라 죽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A의 일상은 정형화되어있다. A는 밥을 먹을 때 물컵이 놓인 위치가 바뀌면 짜증을 냈고,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식사를 하지 않는다. 볼펜 위치 하나, 먹나 남긴 과자 한 조각 잊는 법이 없다. 뇌병변장애인으로서 긴 시간 시설에서 생활해온 A는 자신이 안전했던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다한다.

 

A는 여행을 좋아한다. A에게 자립생활주택은 동거인과 바다에 가는 여행을 기다리는 곳이고, 일자리는 KTX를 타고 멀리 가는 여행이다. 어제와 한치라도 다른 오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뒤, 언제 여행을 갈 수 있는지 묻는 A의 모습에서 나는 일관성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A는 지역자립 후에 그동안 주 3일 참여했던 일자리를 그만두었다. 2년간 활동했으니 이제는 쉬고 싶다는 A의 말을 나는 '내 마음대로 내 시간을 보내고 싶다'라고 이해했다. '인생을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는 식으로 퉁치기에 그의 삶의 방향은 너무도 오랫동안 다른 이에 의해 결정되어왔다. A는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말을 "나 다음 주에 여행 갈 수 있어?"로 표현했다. 일자리를 그만두면서 '멀리 여행가는 일정'이 없어진 A는 1년에 최소 3번 활동지원사와 함께 '잠을 자고 오는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중 목적지가 정해진 유일한 여행이 부모님 성묘를 가는 서천 여행이다.

 

서천군 문산면 북산리에는 A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성묘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는 차도를 막고 있던 트럭 운전사는 A 육촌지간이었다. A 그들에게 누나와 형수에 대해 물어봤다. 누나의 행적은 묘연했고, 형수는 얼마 한식 형의 묘에 성묘를 다녀갔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 형의 묘를 찾았다. 거기에는 며칠 형수가 심은 나무 다섯 그루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형수가 다시 오면, A 형수를 보고 싶어함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반응형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달장애인 G, 안전모, 자기결정권  (1) 2022.07.31
보다보면  (0) 2022.04.17
아듀 2021 상  (0) 2021.12.29
엄마, 아빠 제주도  (0) 2021.10.21
[발언문] 탈시설 미사 발언문 (2021.10.13)  (0) 2021.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