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지원사 D가 전화했다. 아침에 G가 출근하다 돌아왔다는 것이다. 나는 쉬는 날이었고, 다음 날 G와 이야기할 테니, 일단 G의 의사대로 하시도록 안내하였다. 점심 즈음 D는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점심은 집에서 G씨와 같이 라면으로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G 씨의 의사를 100%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얼마전 퇴소한 장애인거주시설) 사진을 보여주면서 하는 말은 자기를 ***로 보내달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십대 때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하여 40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보낸 G는, 올해 1월 장애인야학 내 공공일자리에 참여한 뒤로 자아와 고집이 커졌고 곧 퇴소를 희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생활기술과 자산이 부족하여 얼마 전 내가 담당하는 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 입주했다.
G의 불만은 내가 그에게 가까운 거리는 걸을 것과 도보 이동 시 안전모와 무릎보호대를 착용하도록 적어도 그에게는 '강요함'이었다. G는 걸을 때 중심이 앞으로 기울어 넘어지곤 했다. 시설에서는 이동 반경이 제한되었고 익숙하기도 하여 타인의 조력이 필요하지 않았으나, 시설 밖은 걷기 어려웠다. 입주 전후로 G는 계속 넘어졌다.
나는 G와 그 주변인(시설 담당자, 일자리 담당자, 장애인복지관 의료진 등)과 논의를 하고 G에게 주택에서 일자리로 출근하는 매일의 주 이동(약 200미터)은 활동지원사 D의 도움을 받아 도보로 이동하고, 그 외 이동은 수동휠체어를 이용할 것을 제안했다. 시설 담당자는 시설에 있을 때 홀로 걷던 G가 나오자마자 걷지 못하는 원인으로 심리적 요인을 제시했고 근육 퇴행을 막기 위해 걷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의료진은 G의 잔여 인생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보조기구보다는 휠체어가 낫다는 의견을 주었다. 일상에서 G를 자주 보아온 일자리 담당자는 G가 걸을 수 있는 범위를 제안해주었다. 추가로 발달장애인은 조작의 위험을 이유로 전동휠체어 구입을 지원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G에게는 아직 전동휠체어를 살 돈이 없는 것과 간신히 구한 활동지원사 D가 G보다 몸집이 작아 수동휠체어를 미는 것을 힘들어한 점도 고려되었다.
수동휠체어를 타고 싶은 G는 계속 걷자고 하는 내게 단말마의 음성으로 불만을 표했다. G는 비언어적 표현으로 의사소통하지만, 눈치가 빠르고 생활지식이 많아 일상대화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갈등 상황의 대화는 쉽지 않다. 무릎을 다쳐 약 2주 간 정형외과 치료를 받은 G에게 무릎보호대와 안전모 착용을 제안하자 G는 강하게 불만을 표했다. 원래 쓰던 야구모자를 만지며 다른 모자는 싫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이면도로 교통사고 동영상을 보여주며 안전모를 써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모를 집어던졌고, 나는 그에게 안전모를 주으라고 했다.
다음날, G는 시설의 사진을 가리키며 자신을 시설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자기 결정권은 무엇인가? 현재 G의 의사는 시설 복귀다. 3개월 전, 그가 시설에서 나오길 원했어도 이를 근거로 G를 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 계속 머무르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G의 시설로의 이동을 도움으로써 G의 자기 결정권 실현을 돕게 되는 것인가? 물론 G는 원하면 내가 담당하는 자립생활주택에서 퇴거하여 다른 주거지를 찾을 수 있으며 그 과정 또한 실질적인 조력을 받게 될 것이다.
당사자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다. 그리고 그 결정은 당사자가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릴 때 진정한 자기결정권 행사가 될 수 있다. 십 대 때 선천성으로 추정되는 지적장애인으로 시설에 입소하여 50대 까지 생활하다 퇴소하여 자립생활주택에 입주한 G가 3주 후 시설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비언어로 표현할 때, 그의 의사 표현이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기준이 있는가?
어쩌면 G는 '안전모 강요' 혹은 안전모를 강요한 나에 대한 불만뿐 아니라, 시설에 살면서 하루에 4시간씩 나오는 것이 좋아서 나와봤더니, 생각보다 외롭고, 활동지원시 간이 모자라 혼자 있는 밤에는 무섭고, 도시 외곽에 위치한 한적하고 넓은 시설이 아닌 복잡한 도심 이면도로에서 걷는 게 불만스럽다는, 시설로 돌아가고 싶은 여러 이유를 가질 수도 있다. 자립생활주택 담당자로서 나의 역할은 그러한 불만의 이유를 없애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앞서는 것은 G의 불만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G의 불만을 파악할 때는 G가 자의로 시설에 들어왔는지 알 수도 없이 40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자의로 시설에서 나갈 수 없었던 경험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 판단이 또한 40년일 수는 없다. 그러나 3주의 시간이 부족함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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