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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아듀 2022 상

by simpleksoh 2023.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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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2022 상


올해를 정리하며 개인적인 '아듀 2022 상'을 선정했습니다. 각 부문 수상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처음 본 그사람 상(인물): 오현이

자식 사랑은 만악의 근원이다. 길어야 100년을 사는 인간이 돈과 권력을 놓지 못해 욕심부리는 이유 열에 아홉은 자식이 아닌가 싶다. 부동산 투자를 시작한 친구는 내 말을 듣고, “네 말도 이해 가는데, 나는 불법이 아니면, 우리 가정이 잘 사는 거 말고 다른 가치 판단은 안 하려고”라고 말했다. 쉬는 시간에 함께 매점에 뛰어가 왕뚜껑을 흡입하던 그와 나의 가치관이 달라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했다. 10월 4일 오현이가 태어났다. 현이는 참 예쁜데, 가끔은 너무 예쁘다. 부의 재분배에 대한 생각은 변함없지만, 맨 몸으로 이 엄혹한 사회를 살아갈 현이의 삶이 안쓰러웠다. 현이가 태어난 후 그 친구와 안부를 주고받다가, 친구의 아이가 많이 아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 근처 조리원은 남편이 들어갈 수 없었다. 짝은 혼자는 너무 외롭다며 조리원 대신 집을 택했다. 월요일에 입원하여 화요일에 출산하고 금요일에 퇴원했다. 3일 차 엄마와 아빠는 어떻게 목을 받치고 다리를 들어야 할지 몰라 기저귀를 갈 때도 함께 했다. 새로 생긴 코 속은 거칠 것이 없는지 숨 쉬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잠을 못 자고 귀를 대면 작게 '색 색' 소리가 났다. 한 번은 아이의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아이가 태어난 은평성모병원 신생아실에 전화했다. 친절한 간호사는 아기 옷을 물었다. 아이의 재채기 소리에 놀라 속싸개와 겉싸개로 아이를 둘둘 말아놓은 아빠는 아이에게 사과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두 아이의 아버지인 동료는 “세네 살 까지는 응급실에 많이 가요. 별 것 아니라고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하하”라고 말했다. 부모는 자식이 건강만 하면 바라는 게 없다는 말이 어느 시점 까지는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현이가 생기자 4살 아이를 둔  친구가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삼성출판사)를 주었다. 생후 1~2개월 꼭지에서 본 글이 참 마음에 들었다.

"배내웃음을  짓는다. 생후 2개월 무렵까지 아이가 빙그레 웃는 미소를 배내웃음이라고 한다. 기분이 좋아 보이거나 엄마를 향해 웃는 것 같지만, 이 시기의 웃음은 정서적이거나 사회적인 웃음이 아니라, 얼굴 근육이 저절로 움직이는 생리적 웃음. 그러나 배내웃음은 마치 엄마에게 "나를 사랑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초기 애착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주 간의 배우자 출산휴가 마지막 날 저녁, 오랜만에 밖에 나왔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맞은편에 태권도복을 입고 검은 뿔테를 쓴 열 살 남짓의 남자아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니 내 옆에서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이십 대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자전거를 탄 아이 뒤에서 서둘러 건너오는 초로의 남성의 얼굴도 보였다. 그 얼굴들 안에서 예쁜 아이들이 보였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손에 침발라 넘기는 상(책): '장판에서 푸코 읽기’ (박정수, 2020)

http://www.yes24.com/Product/Goods/91437147

 

‘장판’에서 푸코 읽기 - YES24

이 시대 변혁운동의 최전선에 위치한 장애운동과 소수자운동의 눈으로 푸코를 읽는다. 왕성한 강연과 저작 활동을 이어가며 자신만의 권력이론을 구성한 푸코는 ‘장애인’이나 ‘도착증자’

www.yes24.com


뱃속에서 발차기를 하는 쑥쑥이가 내일이면 배 밖으로 나온다는 게 서운한 짝은 입원실 침대에 누워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나는 간이침대에 누워 푸코의 장애에 대한 사유를 소개한 책을 읽고 있었다.

"p. 220, 검사(삼중표지자검사; 태아의 다운증후군 위험도를 계산하는 검사) 절차를 받아들인 여성은 일반적으로 유전적 손상이 있는 아이를 가질 위험성 1퍼센트와 양수검사로 인한 유산 위험성 1퍼센트가 수치상으로는 똑같음에도 후자를 덜 위협적으로 여긴다. 장애아 출산과 유산의 확률을 비교할 때 작동하는 합리성은 이미 중립적이지 않다. 산전 장애아 검사 절차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이미 정부가 견지하는 우생학적 합리성을 받아들였다는 것으로, 아이를 잃는 유산의 고통보다 장애아를 낳는 고통의 크기가 더 크게 설정된 세계로 들어감을 뜻한다."

수술실에서 신생아실로 올라오는 현이를 처음 만났을 때, 간호사는 손가락과 발가락 개수를 세어주었다. 나는 ‘스무 개가 아니어도 이 아이가 예쁜 것은 달라지지 않는데’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발달장애로 이어지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임신 9주 차이던 지난 3월, 짝과 나는 코로나에 걸렸다. 체온이 40도에 육박해 힘들어하는 짝 옆에서, 나는 임산부의 코로나 확진이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을 찾아봤다. 코로나는 발달장애 발생률을, 발열은 자폐스펙트럼장애 발생률을 높인다고 했다. 사람이 장애와 무관하게 존귀함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텐데, 장애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현이가 발달장애인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니 생각이 많아졌다. 올초 아이가 태어난 친구는 임신 중에 부부가 확진되었다. 태어난 아이는 선천성 순환계 기형이 있었고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았다. 한 사람이 자신의 몸이 당췌 기준을 알 수 없는 장애 분류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다양한 몸에 맞춰 존중을 받을 수 있도록 시민권의 경계가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p. 290, 스토아 학파의 또 다른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견유주의자를 정찰견에 비유했다. 견유주의자는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인간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인류보다 앞서 파견된 정찰병이라는 뜻이다.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생활도 그렇다. 시설 밖 생활이 불가능할 것 같던 중증장애인이 자립생활을 이어나갈 때, 의사결정은 커녕 의사표현조차 못할 것 같은 발달장애인들이 씩씩하게 사회생활을 해나갈 때 그것은 인류 전체의 역량, 사회적 역량의 한계치를 매번 갱신하는 사건이 된다."

달팽이관 눈물바다 상: 광화문에서(규현, 2014)
https://www.youtube.com/watch?v=rUbq_IXBaYg


며칠 사이 날이 많이 추워졌다. 보일러 온도를 올린다고 올려도 집 기온이 20도를 넘지 못했다. 아이가 자꾸 깨는 게 그 때문인가 싶어 신경이 쓰였다. 온도를 더 올려볼 수도 있겠지만, 지난달 가스요금에 놀란 생각이 나서 전기 온풍기만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날이 추워지면, 아랫마을 야학 학생들이 안부를 물을 때마다 "전기장판 있잖아요"하던 말이 떠올랐다. 아이가 따뜻하게 목욕이라도 하면 편히 잘까 하여 저녁 무렵에 목욕을 시키고 옷을 입히는데, 라디오에서 규현의 '광화문에서'가 흘러나왔다. 그동안 들리지 않던 가사가 마음에 박혔다.

"누구보다 더 사랑스럽던 네가 왜 내게서 떠나갔는지"

눈 속에 별빛을 담은 예쁜 아이들이 친구들과 놀겠다며 저녁에 나가서는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이 생겨도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사회가 돼서는 안된다.

마그네틱이 떨려요 상(구매): 풀무원 정면
https://prod.danawa.com/info/?pcode=12137039

 

풀무원 자연은 맛있다 정면 102.8g (4개) : 다나와 가격비교

식품/유아/완구>라면/통조림>라면, 요약정보 : 봉지라면 / 일반라면 / 실온보관 / [영양정보] / 표시기준량: 120.8g / 열량: 385kcal

prod.danawa.com

지난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공릉동에 사는 친구를 만났다. 32년 동안 한 번도 아기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친구는 아이의 예쁨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9개월 차 아버지가 되어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돼지 살처분 사진을 봤다. 파란 비닐 장판이 깔린 커다란 구덩이 아래 아기 돼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옆에 아기 돼지를 바라보는 어미 돼지와 구덩이 밖으로 올라가려는 어미 돼지가 있었다. 구덩이 밖에는 떨어지지 않으려는 어미 돼지들이 있었다. 어미 돼지가 구덩이에 떨어지면 아기 돼지들을 밟을 것이 분명했고, 밟히지 않은 아기 돼지와 어미 돼지들은 곧 함께 흙 속에 파묻힐 것이었다. 친구의 부성애와 돼지의 모성애 사이에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날부터 쾌고 감수를 하는 생명체를 먹지 않기로 했다. 기준은 내 감정이 허락하는 정도로 했다. 우유와 달걀은 먹기로 했다. 이전에도 육류를 즐기지 않아서 크게 불편한 건 없었는데, 라면이 문제였다. 내 술버릇은 집에 돌아와 라면을 먹는 것이다. 이 문제는 동네 마트에서 풀무원 정면을 보고 해결됐다. 다만, 라면을 끓이기만 하면 현이가 우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사실 현이는 우리 집에 온 두 번째 아이다. 첫째는 오시민이다. 시민이는 6주차 때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었고 7주차가 되던 2019년 1월 2일 한번 나와볼 법도 한 세상을 굳이  보지 않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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