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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보다보면

by simpleksoh 2022.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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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거주시설 ***에 사는 J는 생활관 1층 밖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에게 올 한 해 시설 밖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날 소개했다. J는 다른 곳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날씨도, 음식도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내가 그에게 산책을 권했을 때 그가 동의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J는 눈빛으로 말한다고 했다. 아직 우리는 눈을 2초 이상 마주치기 어려웠다.

산책을 마치고 가게에서 사 온 과자를 뜯었다. J는 입 안에 과자가 있어도 과자를 입에 넣었다. 기침하면서 과자를 먹었다. J에게 음료수를 권한 뒤, 과자와 J 사이에 음료 페트병을 놓고 J에게 '입 안에 음식이 있을 때 계속 먹으면 사레가 들려요'라고 말한 다음, 노트에 'J는 입 안에 음식이 있어도 계속 음식을 입에 넣는다'라고 적었다.


페트병을 치우면, J는 과자를 입에 넣었다. 나는 음료수를 권하고 과자와 J 사이에 페트병을 놓고, J에게 '입 안에 음식이 있을 때 계속 먹으면 사레가 들려요'라고 말하고 노트에 그가 좋아하는 과자를 적었다. 몇 차례 페트병이 더 움직인 뒤, 나는 적는 것을 그만두었다.


J는 점심을 먹으러 갔고, 나는 생활관 1층 밖 의자에 앉았다. 올해 J와 함께 있을 때, 페트병을 움직이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음!"

 

무슨 소리인가 하여 위를 보니, G가 2층 생활관 창문에 몸을 명치까지 내밀고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1층으로 내려온 G와 악수를 하고 노란 햇살이 쌀쌀한 오전 공기를 밀어내는 정오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 입주를 희망한다는 그를 처음 보던 날, 나는 G에게 이런저런 물음을 건넸다. G에게 내 말이 닿는 지 알 수 없었다. G와 눈을 마주쳐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앞으로 G와 어떻게 의사소통해야 하나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건물 주차장에서 G를 두 번째 만났다. 서로 간에 코로나 확진이 되었기에 몇 주 만에 인사를 하는 내게, G는 아주 천천히 오른손을 올려 악수를 청했다.


정오의 벤치에서 그를 세 번째 보았다. 동료 활동가 P가 내게 시설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권했고, J를 생각하며 마음이 무겁던 나는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다른 동료 Y가 내게 점심을 안 먹느냐고 묻자, G는 "음" 하면서 나를 식당 쪽으로 밀었다. 메뉴가 궁금해 가본 식당에서 큼지막한 계란말이 프랑크 소시지가 있었다. 밥을 다 먹고 나오니 J와 일 년을 재밌게 보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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