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정리하며 개인적인 '아듀 2020 상'을 선정했습니다. 각 부문 수상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마그네틱이 떨려요 상(구매): 지큐퍼니처 1200 책장
혼자 살 때는 가구랄 것이 없었다. 빈방에서 통화할 때면 내 목소리가 울려서 상대방은 “얼마나 넓은 집에 사는 거냐” 고 묻곤 했다. 승아와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공간에 대한 고민은 책에서 나왔다. 나는 책만 빼고 잘 버렸고, 승아는 책을, 그중에서도 대하소설을 좋아했다. 우리 집의 인테리어 중심은 책장이 되었다. 올해 초 우리는 마루에 남은 한 면에 책장을 놓기로 했다. 대략의 색깔과 크기의 최대치만 정한 뒤, 중고가구점과 백화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장을 찾기로 했다. 먼저 간 은평구재활용센터에서 이 책장을 보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장은 소설 전용으로 사용 중이다.
손에서 놓질 못해 상(어플): TickTick(일정관리 앱)
일정관리 앱의 특징은 메모와 시간의 연결이다. 자유시간을 충분히 즐긴 뒤, 습관을 관리해볼 생각에 일정관리 앱을 깔았다. TickTick은 반복되는 취미나 다짐, 달력 앱에 작성한 일정, 순간순간 떠오르는 해야 할 일 등을 시간 순서대로 정렬해준다. 기기 간 연동, 외부 일정 불러오기, 입력의 편의성, 가시성 등 만듦새도 좋다.
apps.apple.com/us/app/ticktick-to-do-list-remind/id626144601
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ticktick.task&hl=ko&gl=US
손에 침발라 넘기는 상(책):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김도현)
작년 4월 20일 대학로에서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 을 마무리 지으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장애인 운동을 하면서 도로나 시설물을 점거할 때마다 경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당신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시민의 권리도 중요합니다.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은 위험합니다. 안전선 안으로 물러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의 삶은 항상 위험했고, 언제나 재난이었습니다. 나는 방 안에 20년을 갇혀있다가 사회로 나왔습니다. 코로나가 없던 시절에도 나는 사회적 거리를 지켜야만 했습니다. 난 집 밖에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만, 내 출근길은 언제나 어려웠습니다. 나는 일하려고 해도 장애인 운동단체 외에 내가 일을 하러 갈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장애인 관련 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도 사회적 비용, 효율성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본이 매기는 가치’에 따라 사람이 구분되지 않는 사회를 상상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자본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자본주의 주류문화를 거부하는 장애인들의 신체적 특징에서 설득력 있게 찾아낸다는 점이다.
simplehuman.tistory.com/54?category=452242
달팽이관 눈물바다 상(노래): 잘 지내자, 우리 (짙은, 2014)
“당신의 이야기가, 우리의 음악이 됩니다.” 이 노래가 들어 있는 앨범의 카피다. 사람들의 사연을 모아 노래로 엮어낸다는 발상이 인상적이었다. ‘잘 지내자, 우리’에는 듣는 이를 생각에 잠기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노래를 제대로 즐기려면, 먼저 영화 ‘족구왕’을 본 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볼 것을 추천한다.
serieson.naver.com/movie/detail.nhn?viewSeq=74053&prodNo=1645372&isWebtoonAgreePopUp=true
망막껌딱지 상(영상): 동백꽃 필 무렵 (2019)
한 여성이 스스로에 대한 사회와 자신의 편견을 깨나가는 이야기. 그 편견은 ‘그녀는 행복할 수 없다.’ 였다. 행복해지는 그녀 옆에는 ’당신 잘났다, 최고다, 훌륭하다, 장하다!’ 라며 우직하게 응원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동백: 그중에서도 딱 저기. 난 저기 앉고 싶어요
용식: 어디유? 분실물 센터요? 왜 굳이 저기?
동백: 저기선 다들 그 말을 하잖아요. 뭐만 찾아주면 다들 그러잖아요. 고맙다고. 고맙다고들 하니까… 제가 살면서요 미안하게 됐다 이런 얘기는 좀 들어봤거든요. 사랑한단 얘기야 뭐 아무렇게나 들었죠. 근데 이상하게요, 아무도 나한테 고맙다고는 안 해요. 아무도 나한테 그 말은 안 해요. 저 분실물 센터에서는 저분이 최고 천사고 최고 은인이에요. 휴대폰, 애기 인형, 아들네 주려고 싼 반찬 이런 것도 다 찾아주거든요. 저렇게 사람들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막 고맙다고 인사하면 기분이 어떨지 상상도 안 돼요.
처음 본 그사람 상(인물): 박OO
형제복지원 생존피해자. 열 살 때 부산진역에서 형제육아원(이후 형제복지원으로 전환됨.)에 끌려갔으며 스무 살에 탈출했다. 홈리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형제복지원 이후의 삶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형제복지원의 서사는 살인과 폭력이 주를 이루지만, 이 문제의 본질은 눈에 보이는 폭력성 너머에 있는 구분이다. 사람이 거리에 살 게 된 이유를 묻지 않고, ‘부랑인’으로 분류하고, ‘집단시설’에 몰아넣어서, 그들과 분리된 ‘또 다른 사람들’의 눈앞에서 치워도 된다는 생각이 이 문제의 시작이다.
어린아이 시절부터 비빌 언덕 없이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했던 박OO 씨는 스무 살이 넘어 양동 쪽방촌에서 윤OO 씨를 만났고, 30년이 넘도록 형제처럼 지내며 서로를 보듬었다. 2020년 중순 윤OO 씨가 사망했고, 윤OO 씨의 장례는 박OO 씨와 동네 주민들이 치렀다.
homelessaction.or.kr/xe/index.php?document_srl=832554&mid=hlnews
The 2020 상(대상): 내 시간
햇수로 십 년 동안 한 종류의 일을 하고 퇴사한 지 곧 일 년이 된다. 백수로 갖는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을 오롯이 나만 생각하며 써보고자 네 가지 계획을 세웠었다.
1. 처음 6개월은 돈을 벌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머물고 싶은 곳에 존재한다.
2월에는 그동안 못 본 사람들을 만났다. 잠을 자고 드라마를 보고 게임을 했다. 3월부터는 주로 ‘홈리스행동’이 있는 원효로의 ‘아랫마을’에 있었다. 3월 시작한 야학 봄학기 권리교실과 연대팀 활동(봄, 가을), 7월부터 참여한 홈리스 뉴스, 9월 개강한 가을학기 글쓰기교실, 10월 소풍, 12월 홈리스추모제(문화제) 준비가 있었다. 그리고 두 명의 당사자의 개인적인 일에 함께했다. 종종 동자동에 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7~8월에는 집에서 드로잉 수업과 구술생애사 강의를 들었다. 9월에는 양동 구술생애 기록팀 활동을 시작했다. 하반기에는 이런 저런 조사를 다니거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는 시간을 주로 가졌다.
2.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주민으로서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아내는 방식을 찾는다.
집 밖의 소식에 염려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고만고만한 개인으로서는 내킬 때 있고 싶은 곳에 있어서 행복했다. 특히 글을 탈고한 순간이 만족스러웠다.
3. 6개월 후 위 방식의 주변에서 내가 생업으로 할 일을 찾는다.
글을 쓰는 행위는 항상 어려웠고 결과물은 부족하기 일쑤였으나, 의미 있는 이야기를 찾고 만들어가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짝과 논의하여 앞으로 얼마간의 기간을 더 갖고 글쓰기 전업, 글쓰기와 파트타임 병행, 구직 중 선택하기로 했다.
4. 처음 6개월 동안 주 5일, 하루 한 편의 글을 작성한다. 내가 얼마나 비어있는지 깨닫고, 무엇을 채워야 할지 발견한다.
22개의 글을 썼고, 12개의 그림을 그렸다. 퇴사 직후 만난 한 선배는 여러 형태의 글을 써보길 권했다. 어떤 날은 긴 글을, 때로는 짧은 글을, 다양한 글을 꾸준히 쓰는 연습이 중요하다고 했다. 3월에는 부지런히 썼으나, 4월부터는 글을 쓰는 속도가 느려졌다. 글을 못 쓰는 달에는 그림이라도 그렸다. 연말에는 잡지에 글을 한 편 실었고, 비슷한 시기에 정리한 인터뷰는 보완해서 다른 이들의 글과 함께 정리해 향후 책으로 낼 계획에 있다. 내 글쓰기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는 한 해였다. 올해 발견한 채울 점은 '제대로 질문하기'였는데, 채워지는 속도는 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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