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

아듀 2023 상

by simpleksoh 2023. 12. 30.
반응형
아듀 2023 상

 
올해를 정리하며 개인적인 '아듀 2023 상'을 선정했습니다. 각 부문 수상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마그네틱이 떨려요 상] - 구매
아디다스 갤럭시6(런닝화)
아디다스 갤럭시6 : 다나와 통합검색 (danawa.com)

아디다스 갤럭시6 통합검색 : 다나와 통합검색

'아디다스 갤럭시6'의 다나와 통합검색 결과입니다.

search.danawa.com

 
7월 어느 퇴근길, 6호선 마포구청역에 내려 불광천을 따라 3킬로미터를 뛰었다. 몸 여기저기 불편감이 느껴져서 두세 번을 쉰 끝에 집에 도착했다. 발바닥과 무릎이 아팠다. 낡은 뉴발란스 574를 신고 뛰는 것은 무리인가 싶어 런닝화를 찾아봤다.
 
죽음을 걸으면서 맞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사울 알린스키의 삶에 대한 동경도 있지만, 걷기 자체를 좋아한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그러면서도 정해진 루트 없이 내키는 대로 꾸준히 내딛는 걸음걸음을 좋아한다. 달리기도 즐겼는데, 무릎도 아플 수 있다는 걸 몰랐던 어린 시절에 쿵쿵 힘을 줘서 발을 딛으며 스트레스를 풀던 여파인지, 이제는 30분 이상 달리면 걷기도 어렵다. 조금만 속도를 높여도 무릎이 아파지자, 걷기는 단순한 이동이 되었다.
 
아디다스의 입문용 런닝화를 구매했다. 런닝화를 신고,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가방 없이 출근했다. 바지의 길이만 짧아져도 이렇게 자유롭구나 싶었다. 퇴근길에 마포구청역에서 내려 뛰어왔다. 발바닥 통증은 없어졌는데, 무릎 통증은 여전했다. 달리기에 조예가 깊은 활동지원사 향길쌤께 조언을 구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뛰세요. 보폭을 줄이고, 높이 뛰려고 하지 말고 앞으로 뛰세요. 불필요한 움직임은 줄이는 게 좋습니다. 빨리 가려고 하기보다 정확한 움직임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면 조금씩 더 멀리 갈 수 있어요.”
 
그날은 야근이 길어져서 오후 10시에 마포구청역에 도착했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드니, 머리 위로 나뭇가지가 성큼성큼 다가오다가 이내 뒤로 사라졌다. 한 발 한 발 집중해 뛰었다. 멀리 보이는 별빛이 착실하게 한 발씩 가까워졌다. 집에 올때까지 한 번도 쉬지 않았다. 그날 기록한 1킬로미터 랩타임은 그전에도 그 후에도 기록하지 못한 5분 18초였다.
 
[달팽이관 눈물바다 상] - 음악
andata(류이치 사카모토, 2017)
Ryuichi Sakamoto - "andata" (from "async") (youtube.com)

Ryuich Sakamoto - async

2014년 인후암 진단을 받은 류이치 사카모토가 그간 작업하던 모든 곡을 버리고 남긴 단 한 곡으로, 2017년 발매한 복귀 앨범 ‘Async’의 첫 트랙이다. 천천히 끊어질 듯 이어지는 피아노 소리를 지나 수상한 소음들과 함께 오르간 소리가 이어진다. 노래 한 곡을 들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내 삶을 돌아보고 무언가 다짐하게 된다.
 
올해 발표된 비틀즈의 마지막 신곡 ‘NOW AND THEN’은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망막 껌딱지 상] - 영상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네오 소라, 2023)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개봉 D-5!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영상 풀버전 보러가기🖤 (youtube.com)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

영화 중반을 지나서, 연주 사이사이 잠시 암전 될 때마다 영화가 끝나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랐다. 엔딩 직전에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울릴 때, 그의 인사를 마음 깊이 받았다.
 
"(사카모토는) 영화를 보고 나서 기뻐 보였어요. 엔딩을 봤을 땐 '나 아직 안 죽었어'라며 쓴웃음을 지었지만요.” - 소라 네오
 
[손에 침발라 넘기는 상] - 책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홈리행동 생애사 기록팀, 후마니타스, 2023)
알라딘: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aladin.co.kr)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전작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를 통해 양동 쪽방촌을 무대로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던 기록팀은 그 속에는 담지 못했던 여성 홈리스들의 목소리를 애써 찾아냄으로써 우리 사회 여

www.aladin.co.kr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하는 여성 홈리스 일곱 분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나는 서가숙님의 청자로 참여했다. 초고가 마무리될 즈음, 한 집회에 발언을 요청받았다. 전 직장 앞에서 진행될 집회였다. 전날 농성장에서 야간 사수를 하여 힘들다며 거절했지만, 실은 집회 장소가 부담스러웠다.
 
구차했다. 구차와 열렬함 사이에서 적당히 살았던 나의 2023년이 끝나가는 12월 초,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복지시설로 병합되었다. 자립생활운동의 한복판에서 활동해 온, 그러나 차별과 무관심에 발이 묶여 학위나 자격증을 갖지 못한, 데일듯 치열하게 활동하던 동료들이 이제는 그들이 당사자이고 증인이며 전문가인 자립생활운동에서 배제될지도 모른다.
 
내가 4분짜리 발언을 요청받고 고민한 날로부터 며칠 뒤, 화자 서가숙은 대중 앞에서 자신의 삶을 꺼내어 여성 홈리스의 실상을 밝히는 자리를 가졌다.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다. 자기 삶을 드러내는 데 거침없는 그녀를 존경한다.
 
“실현되지 않았더라도 실현된 것과 똑같이 선명하게 누군가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는 것이 있을 겁니다. 소설이란 형체가 남지 않는 것, 사라지는 것을 진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라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인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아쉽게 수상에 실패했다.
 
[그사람 상] - 인물
 
윤지영

 
2013년 후반, 코빌에서 윤지영을 알았다. 나는 일자리 언저리에서 ‘윤지영 팀장님’, 코빌 언저리에서 ‘윤랄라’라고 그녀를 불렀고, 그녀는 마지막 음절을 길게 늘이고 ‘~’부호가 두 번은 붙은 듯한 독특한 억양으로 ‘규상쌤’ 혹은 ‘심플’이라고 나를 불렀다.
 
그녀의 말은 신중하고 단단했다. 그녀는 내가 속했던 개발협력단체의 해외사업 지원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의 외부 위원이었다. 해외의 한 마을과 서울의 본부 사이의 시공간적 거리 안에서 헤매는 실무자에게 그녀는 조심히 고른 말을 들려주곤 했다. 그 말을 하던 그녀의 두 눈이 내가 아닌, 바로 그 마을에 사는 주민들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2015년 초, 그녀는 국제개발협력분야 웹매거진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개발협력활동가의 글을 싣고 싶다면서 내게 글을 써볼 것을 제안했다. 누군가 글을 요청한 건 처음이었다. 도보 행진에서 만난 한 유가족과 세월호 참사를 영상에 담은 한 피디에게 허락을 구해서 얻은 그들의 말, 그리고 참사 1년 전 불시에 세상을 떠난, 내가 어릴 적에 한동안 나를 길러준 막내 외삼촌의 이야기를 담은 글을 그녀에게 보냈다. 그녀의 답신에서 ‘뭉근하다’라는 단어를 처음 보았다. 이후 내가 동료들과 함께 세상에서 말해지지 않는 이야기를 담은 두 권의 책을 내게 된 계기 어딘가에, 그날 그녀의 제안이 있었다.
 
2021년 10월, 혜화역 인근에서 짝과 밥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와 마주쳤다. 남편분과 같이 마로니에공원 나무 밑 벤치에 앉아 눈 부신 햇볕을 쬐고 있었다. ‘심플~~’이라는 목소리를 들으며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올해 초, 그녀에게 현이의 탄생에 대한 진심 어린 축하를 받았다. 정말 반가운 인사였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 모두 평화롭기를 진심으로 빈다.
 
김정호

 
김정호 이사장님을 언제 알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코로나 전후로 아랫마을 활동을 하며 만난 그를, 나는 처음에는 ‘이사님’ 이후에는 ‘이사장님’이라고 불렀고, 그는 나를 보면 “아이고~ 오셨어요!”라고 반겨주셨다. 내 이름을 아셨는지는 모르겠다.
 
2020년 10월, 홈리스뉴스에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이 홈리스의 삶에서 갖는 의미를 살펴보는 글을 실으려 그와 인터뷰를 나눴다. 인터뷰 당일과 나흘 전 돌아가신 두 동자동 주민의 시신 사진을 보여주며 늘 상냥하던 그가 욕설을 흩뿌렸다. 그는 그날 저녁 “제 목소리 내 주세요 개새끼를 개새끼라 하면 미안하여 개* 보다 못한 새끼 드리지요”라고 카톡을 주었다. 기사에 새X와 개XX로 나갔음을 사과하는 내게 그는 괜찮다고 했지만, 매우 서운해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제라도 그의 말 한 조각을 올린다.
 
“빈익빈 부익부. 없는 사람은 개차반으로 밟는 것이 이 나라 실정이에요. 적어도 떡 조각은 던져 줘야지. 이 개새끼들은 자영업하고 돈 잘 버는 데만 퍼주고. 그런 사람들이 돈 많이 받는다면 세금 많이 낼 줄 아나. 더 숨기고 세금 안 내요.”
 
어쩌다 한번 만나도 늘 편안했던,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던 주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감히 짐작해보았던 그의 평화를 진심으로 빈다.

반응형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D+482 오늘의 육아  (0) 2024.01.28
D+477 오늘의 육아  (1) 2024.01.23
2023년 7월의 이야기  (0) 2023.08.08
2023년에 떠나간 님을 추모하며  (0) 2023.08.08
부처님 오신 날의 창신동  (0) 2023.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