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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언행불일치

by simpleksoh 2014.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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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많습니다. 입사 첫날, 느닷없이 울리는 전화가 주는 긴장감, 전화를 받으면 뭐라고 해야할지 고민하는 직장인의 일상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드라마나 영화에 감정이입을 잘합니다. 이등병 때 본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몇번을 봐도 여전히 울컥하게 됩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사랑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제 마음을 움직인 것은 모자관계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행복하게 사는 어머니에게 복수하는 과정 속에서 남자는 매회 말미에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다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자신이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와 어머니 역시 끝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 잃어버린 자신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매번 감정을 주체하기 힘듭니다.

드라마를 본 뒤 눈물을 닦고 마루에 나왔을 때, 밥먹으라는 엄마의 말을 퉁명스럽게 거절하고 친구를 만나러 가고는 했습니다. 드라마 속 엄마의 마음은 이해하면서, 정작 내 엄마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생각과 행동이 다른 것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저는 작년부터 주민운동을 배우고 있습니다. 개인이 힘을 갖기 힘든 세상에서 사람들이 일상의 행복을 위해 변화를 추구하고, 변화하기 위한 동력을 갖기 위해서 주민 조직을 만들고,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주민운동이라고 합니다.

이걸 배우면서 저는 서울역 근처 한 마을을 알았습니다.  가끔 가서 도배도 하고 밥먹으러도 갑니다. 그곳 분들은 서로 친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그냥 보내는 법이 없습니다. 함께 웃고 떠들며 한두시간 은 쉬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분들과 같이 밥을 먹다보면 공동체성이 살아있는 진짜 이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아픈 분들인데도 순수하게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거짓없이 살고자 최선을 다하는 그분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뻑이 갈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한번은 이야기를 나누다 제가 아랫집 사람의 이름조차 모른다는게 떠올랐습니다. 이런 제가 주민운동을 이야기하는게 하는게 웃겼습니다.

우스운 것은 또 있습니다. 제가 가족에게 무신경합니다. 어릴 때부터 머리만 커서 세상 어딘가에 분명한 정의가 있고, 제가 세상을 정의롭게 만드는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생각에서 우선순위를 뽑아내고, 주변일의 중요성을 매겨 관심갖거나 무시했습니다. 인류애, 행복같은 단어를 매일 썼지만 내 가족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주민운동을 배우면서 변화된 점은 가족이 소중해진 것입니다. 짜증난다고 엄마한테 합리적으로 따져서 좋을게 뭐 있겠습니까. 따박따박 따지는건 책상 위에서 하면 되고, 집에서는 좀 바보같아지려고 합니다.

예년과 같이 크리스마스를 친구들하고 보내기로 했다가, 부모님과 제주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에게 계획을 취소해야겠다고 하니, 친구는 제 뜻을 반기며 그게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제주도 하늘이 맑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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