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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기록과 기억의 싸움

by simpleksoh 2015.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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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하이텔, 라이코스의 몰락, 디지털 유목민의 기록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화려한 90년대를 지나, 이젠는 사라진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등의 PC통신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개인의 영역에서 사이버 스페이스가 구현되기 시작하던 이시기 PC통신은 정보의 집합소였고, 여기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하이텔 게임 동오회 개오동에서는 안철수 의원이 롤플레잉 게임에 대한 글을 썼고, 메탈음악을 다루는 메탈동에서는 언니네이발관, 델리스파이스 같은 인디 1세대들이 결성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보급 후, PC통신은 모두  힘을 잃고 사라졌습니다.

인터넷 시대에도 비슷했습니다. 최초의 포털인 야후를 비롯해 엠파스, 라이코스 등이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커뮤니티 서비스로 천만명의 회원을 모은 프리챌도 서비스를 종료했고, 학창시절 추억을 불러일으킨 아이러브스쿨이나 다모임 역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대부분 서비스들은 종료 전 한달을 백업기간으로 제공했는데, 이미 위 서비스들에 대한 관심을 잃고 백업에 대한 공지도 받지 못한 사람들의 기록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최근에는 미니홈피로 유명했던 싸이월드 역시 각자의 옛 기록을 보관하는 창고가 되가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손톱만한 크기에 128기가가 들어가고, 제 노트북에 음반이 200개가 있는데, 30기가 정도 입니다. 인터넷 버튼만 누르면 얻을 수 있는 무한한 정보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그리고  그 많은 정보가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많은 정보를 쉽게 쓰고 얻으면서, 누군가는 SNS에 자신을 계속 남기고자 하는 저장강박에 빠지기도 하고, 범람하는 무가치한 정보 속에서 진실한 지식은 위기에 빠지기도 합니다.

제가 이 기사를 보고 한참을 생각했던 것은 10월 30일 있었던 모임 때문이었습니다. 그날은 최근 자주 만나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이 주최한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처음 만나본 유가족분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4월 16일부터 팽목항, 안산, 광화문, 청운동 등지에서 보았던 장면, 들었던 말, 느꼈던 감정들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팽목항에서는 볼 수 없던 구조작업이 방송에서는 계속 되고 있다고 이야기 할 때의 의아함, 당혹감, 분노, 일말의 기대감과 좌절.

육개월이 지난 10월 말, 간혹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만 놀랄만큼 침착하게 최대한 자세히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하시던 유가족과 대책회의 활동가는 자신들의 앞으로의 활동이 기록과 기억의 긴 싸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95명의 사망자, 9명의 실종자, 살아남은 172명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배가 왜 가라앉았는지, 무슨 기준으로 운행가능한 배의 수명은 30년으로 늘어났고, 무리한 증축이 허가 되었으며, 987톤을 실을 수 있던 배가 세배가 넘는 3,600톤이 실렸는지. 어떤 이유로 생때같은 목숨을 담보로 이런 위험한 결정이 내려졌고, 사고에 대한 구조 대응은 무용지물이었는지 최선이었는지를 밝히기 위한 싸움은 이제 세월호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으로 넘어왔습니다.

다시 돌아가, PC통신의 백업 없는 서비스 종료는 90년대에 자신의 정체성을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찾던 수많은 사람들의 한 시절의 삭제를 의미합니다. 기록이 사라지고, 기억하는 자가 줄어들면 진실 또한 사라질 수 있음을 우리는 이십년간 수요일마다 광화문에 모이는 이제는 50여명 밖에 남지 않은 할머님들을 보며 알 수 있습니다. 진실은 알기 쉽지 않습니다. 다만, 진실에 대한 정확한 기록과 이를 왜곡해서 기억하려는자, 왜곡된 기록에 맞서 진실을 기억하려는 자가 있다면, 진실을 지키고 혹은 찾는 사람들과 함께 할 사람들이 지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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