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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잘'이나 '좋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겠다.

by simpleksoh 2015.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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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 지인께 제가 있는 기관이 발행한 포스터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티비 광고 등에서 굶고있는 눈이 큰 아이를 보면 아이의 불행에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우리 기관의 포스터에 있는 아이를 보면 밝은 기분이 든다고 했습니다. 마을의 빈곤보다 희망을 강조하는 본부의 지향이 드러난 사진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론가로 힘차게 가면서 밝은 미소를 짓는 아이가 나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최근에 몇분과 이런 주제에 대해 나눈 뒤, 저는 '잘'이나 '좋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추석 얼마 전에 코코(아시아에서 주민운동을 실천하는 기관)를 방문했습니다. 주민운동, 엔지오계 선배들이 오셨습니다. 저는 주민운동을 지향하는 엔지오 활동가로 참석했습니다. 


그날 코코는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현장에서 주민조직 형성을 돕는 활동을 보고한 후, 주민운동계의 선배 활동가들에게 개발협력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설명은 한 엔지오에서 십여년간 일하고, 현재는 청소년과 함께 지내는 선배 활동가가 했습니다. 일반기업에서 몇년간 일하다가 가치를 쫓아 엔지오에 입사한 후 아프리카 담당으로 몇년간 자부심을 갖고 일하던 그는 1년간 스리랑카에서 현장활동을 하며 개발의 다른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잘산다는 기준이 왜 GDP뿐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서로 기대어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돈맛을 보여주는 개발의 모습을 봤다고 했습니다.


한 병원이 외국 심장병 아이를 수술해주고 싶어, 엔지오에 의뢰를 하고, 엔지오는 애를 살리고자 이에 응합니다. 가나의 가난한 아이가 선정됩니다. 비자문제로 엄마는 오지 못하고 아이 혼자 옵니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하고, 엔지오와 병원은 이를 축하하며 아이와 함께 롯데월드에 가서 사진을 찍고, 초코파이를 먹습니다. 한달이 지나고 아이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가나 아크라 공항에 내립니다. 공항에서 아이를 기다리던 어머니를 보는 순간 아이는 울기 시작합니다.


"엄마 가! 나 한국 돌아갈거야!"


지금까지 아이를 품어왔던 가나 어머니의 삶이 초라해지기 시작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개발협력의 지향을 생각했습니다. 개발협력은 두개 이상의 주체가 하는 활동이지만 변화의 대상은 한쪽입니다. 두 주체가 같이 한쪽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은 두 주체가 다름을 전제합니다. 대상국가와 우리나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떻게 표현해도 돈입니다. 빈곤, 의료서비스 접근성, 초등교육 이수율, 심지어 현시대에는 민주주의와 굿거버넌스까지 없으면 개화되어야 할 대상이라며 이슬람권의 후진성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이전의 삼한 때 있었던 연맹왕국 형태를 유지하는 아랍 에미리트를 개발협력 해야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돈이 많습니다.


돈이 많은 삶이 잘사는 삶이고,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 누리는 생활양식을 따라가야 하는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옷을 안입는 마을은 보았지만, 그곳은 날씨가 따뜻해서 옷이 없어도 괜찮은 곳이었습니다.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은 본 적도 없습니다. 그것은 지진이 난 네팔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신 제게 익숙한 것은 제눈에 누추한 집에 들어가도 가지고 있는 귀한 것을 선물로 주는 사람들입니다. 네팔에서도 빈민지역으로 알려진 올드버스팍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반지와 팔찌들을 겹겹이 받았고, 캄보디아 깜뽕꼬 아이들에게는 매일 꽃과 여러 색으로 쓰여진 이쁜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그 마을의 리더가 되고, 나라의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믿는 부모님, 선생님, 수녀님을 알고 있습니다. 전 그 사람들을 생각할 때, 가난을 떠올리기 힘듭니다. 제가 존경하는 동자동 주민들을 생각할 때도 그렇습니다. 정확하게는 돈이 없음을 지칭하는 가난을 떠올릴 수 있지만, 무기력한 사람들에게 내가 당신보다 잘사니 당신을 잘살게 해주겠다라는 생각을 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요즘은 돈이 많으면 행복하고, 배울점이 많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가난에서 학습된 무기력을 사람의 본질로 착각하고, 이사람들은 믿으면 안된다. 정신을 개조해야한다고 쉽게 이야기합니다. 꽃을 건넬 줄 아는 캄보디아 아이들이 앙코르와트에서는 관광객에게 구걸하는 것은 누가 가져온 문제일까요.


이런 생각을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잘', '좋은'이라는 불분명하면서 필연적으로 존재들을 나은 것과 부족한것으로 구분짓는 형용사는 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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