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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15년 4월 25일 네팔 이야기

by simpleksoh 2015.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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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425일 점심, 저는 포카라의 한 호텔에 누워 있었습니다. 갑자기 가구들이 덜덜덜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근처에 있는 공사로 인해 생긴 진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동은 점점 커졌고, 벽과 마루, 제가 누워있는 침대까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운 마음에 1층으로 내려오니, 제가 서있는 땅이 마치 트램펄린처럼 울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약 8,000명의 사망자와 약 800만명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네팔 지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지진이 발생하면, 무너진 건물이나 산에서 주로 피해가 발생합니다. 제가 있던 포카라는 높은 건물이 적어서, 피해가 적었지만, 네팔 전체 인구의 10%320만명이 살고있는 카트만두는 피해가 컸습니다. 특히, 좁은 곳에 밀집한 오래된 건물들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희생을 당했습니다.



네팔 지진 직후 카트만두 간단한 인간

 

히말라야를 찾던 관광객으로 유지되던 번화가가 무너진 폐허 위로,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부유한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공항으로 몰렸습니다. 공항의 하늘은 비행기기가 엇갈렸고 지상에는 끝도 없이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습니다. 하루 이상을 기다린 후, 비행기가 오면 사람들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이 카트만두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네팔 사람들과 긴급구호 활동가들 이었습니다. 외국에서 네팔의 처참한 상황을 본 네팔인들은 각자의 가족에게 연락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화는 대부분 불통이었고, 가족들과 연락이 안된 그들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카트만두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국제 카리타스를 비롯한 긴급 구호 기관들은 연대를 통해, 피해자를 구조하고. 사람들에게 식량과 임시 거주지 등을 제공하였습니다. 국제 카리타스가 세운 초기 사업 예산인 약 31억원은 모금 직후 모두 모였습니다.

 

그렇게 지진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사람과 물자가 나가고 들어온 지 네 달이 되어갑니다. 네팔의 도시 기능은 완전히 마비되었었지만, 네팔의 국민들은 두 번의 강진과 매일 이어지는 여진에도 불구하고 빠른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큰 단체뿐 아니라 각 지역의 주민들은 내 가족, 내 이웃을 돕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전보다 더 잘 복구하자 (BBB: Build Back Better)” 원칙에 따라 구호에서 복구와 재건축 활동으로 넘어가고자 노력 중입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돕기는 힘들지만, 열 사람은 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네팔에 지진이 났을 당시, 가난한 나라에 발생한 비극에,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그 슬픔이 마음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네팔에 전달되었으며, 네팔의 사람들 역시, 절망하는 대신, 아픈 이를 돕고, 이전의 삶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보여주는 이 모습들이 계속된다면, 네팔사람들의 삶이 슬픔을 딛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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